첫째의 가출
오늘 아침, 우렁차고도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에 잠이 확 깼다.
"엄마, 아빠! 아직도 주무시면 어떡해요!!!"
첫째였다.
시계를 보니 7시 50분. 오늘따라 남편과 내 핸드폰 알람이 모두 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첫째는 이미 야구복으로 완벽하게 환복해 서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에, 첫째가 방금 ‘가출’을 하고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조용히 집을 나와 야구복 차림으로 훈련을 하고 있었단다. 그것도 현관문에 “진학”이라고 큼지막하게 적어놓고서.
새벽에 자기가 없으면 엄마와 아빠가 놀라서 자기를 찾을 것이고, 밖에서 야구 훈련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감동받아서 야구부 중학교 진학을 허락해 줄 알았단다. 하지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누구를 찾는다는 긴급 안내문자 하나 오지 않자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고, 결국 학교에 갈 시간인 7시 50분을 ‘가출 마지노선’이라 정해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 런! 데!
집에 와보니 — 가족 모두가 꿀잠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야심 차게 준비한 첫째의 ‘감동 가출 작전’이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나버린 순간이었다.
첫째는 황당함과 아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남편과 나, 그리고 쌍둥이 형제를 흔들어 깨우며 왜 우리 가족이 이렇게 잠이 많냐고, 자기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며 억울해했다.
아직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눈을 비비던 남편과 나는, 진지하게 가출 과정을 설명하는 첫째를 보며 웃음이 터졌다.
야구부 진학을 위해 가출까지 결심한 마음은 기특했고, 학교에 가야 한다며 제시간에 들어온 것이 귀여웠고, 그 모든 걸 우리가 모르고 자고 있었다는 사실은 더 웃겼다.
그렇게 정신없는 아침이 지나고 첫째를 학교에 보내고 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아직 어린아이 일 줄만 알았던 첫째가 자기 꿈을 위해 새벽부터 혼자 일어나 계획을 세우고 행동까지 옮겼다는 사실이 기특하면서도 짠했다
그 아이에게 ‘야구부 중학교 진학’은 그만큼 간절한 목표였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작은 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시도를 해본 것이다. 비록 그 시도가 우리 가족의 숙면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 버린 해프닝이 되어버렸지만, 그 마음만은 결코 가벼운 장난이 아니었다는 걸 부모인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순간이 온다.
어설프고 서툴지만, 그 서투름 속에 담긴 진심이 부모의 마음을 푹 파고드는 순간.
첫째의 가출 소동은 그런 종류의 감동이었다.
아마도 오늘 아침의 그 해프닝은, 우리의 기억 속에는 ‘신중하고도 무모한 첫째의 반란’으로, 그리고 첫째의 기억 속에서는 ‘잠꾸러기 부모 때문에 실패한 반항 프로젝트’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런데 첫째는 마지막까지 웃기긴 했다.
"5시 30분은 너무 힘들었어요. 다음엔 6시에 가출할래요"
첫째야. 다음에 가출할 땐 엄마아빠 알람을 맞춰놓고 나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