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KMO 도전기

넘어지고 또 일어나고

둘째는 KMO를 준비 중이다. 한국수학올림피아드, 줄여서 KMO.


수학을 좀 한다는 초·중등 학생들은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인 공통수학 1, 2를 끝내고 나면 KMO 준비에 뛰어든다. 요즘은 영재고나 과고 진학에서 KMO 입상 결과를 반영하지 않아 예전만큼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한 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시험이다.


둘째도 공통수학 1, 2가 끝나자마자 KMO 준비를 시작했다.


이상하게 나는 둘째의 수학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앉아서 놀기 시작하던 7~8개월 무렵부터 숫자만 가지고 놀던 아이, 여섯 살에 구구단표를 사달라고 떼를 쓰던 아이. 남들처럼 대형 수학학원에 보내지는 않았지만 황소 높은 반을 척척 붙던 아이. 남들과는 다르다고, 내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수학적 재능은 타고난 아이라고, 혼자서 꽤나 단단히 믿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믿음이라기보다 착각에 가까웠다.


KMO 모의고사가 끝난 지 며칠 후, 학원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의고사 성적이 너무 안 나온다고 했다. 열심히 하는데도 성적이 계속 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실 부끄럽지만, 매 수업 후에 날아오는 복습 과제 결과나 모의고사 성적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신경 쓴다고 아이가 더 잘할 것도 아니고, 둘째는 알아서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늘 느긋했다.


KMO 과목인 정수, 대수, 기하, 조합 중에서 뭐가 특히 부족하냐고 여쭤봤더니, 네 과목 모두 골고루 부족하다고 했다. 수학적 이해 속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느리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뒤로 선생님이 무슨 말을 더 하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둘째가 골고루 다 못한다니. 수학적 이해력이 느리다는 말은 아이를 키운 지난 13년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늘 느긋하게 지켜봐 왔던 만큼, 그런 부정적인 피드백에 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수학을 잘하는 아이가 둘째라고 생각해 왔으니까.


왜 저렇게밖에 상담을 못하나 하는 선생님에 대한 원망이 들다가, 곧바로 나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다.


KMO를 준비시키는 다른 엄마들은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방학마다 유명 선생님의 특강을 예약하고, 과외 선생님을 붙이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걸 나는 애써 외면해 왔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우리 둘째는 알아서 잘할 거야”, “다른 아이들이랑은 다를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다. 학원 전화를 받고 나서야 부랴부랴 방학 특강을 알아봤지만, 겨울방학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인기 있는 수업은 이미 모두 마감이었다.


늘 이랬다.
뒤늦게 정보를 듣고 학원에 전화하면 대기 번호가 300번, 400번이라는 말을 들었던 적도 여러 번이다. 그 순간에는 ‘조금만 더 부지런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잊는다. 마음 한편에는 ‘엄마가 설친다고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나’라는 생각이 있었고, 또 다른 한편에는 그냥 귀찮다는 마음도 있었다.


둘째에게 미안해졌다. 첫째의 야구 문제로 한참을 고민하느라, 둘째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게 사실이다. 부모라는 게 늘 부족한 아이에게 더 신경이 쓰이는 존재인지, 여리고 예민한 첫째에게는 항상 마음이 갔다.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둘째에게는 나도 모르게 ‘괜찮겠지’라는 믿음을 먼저 두고 말았다.


기분은 기분이고, 둘째가 집에 오자마자 남편과 나는 조금 과할 정도로 격려를 해 주었다. 너처럼 꾸준히 성실하게 하면 결국엔 잘할 수밖에 없다고. 그랬더니 둘째가 말했다. 자기는 열심히 하는데, 숙제도 안 해 오고 노는 것 같은 아이들이 시험을 더 잘 보는 게 너무 속상하다고.


알지. 나도 그 마음 알지.

특목고에 다닐 때, 늘 엎드려 자고 놀던 아이들이 시험만 보면 나보다 잘 봤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무기력감, 자괴감, 상대적 박탈감. 차라리 보지 않으면 ‘저 아이도 밤새 공부했겠지’ 하고 착각이라도 할 텐데, 기숙사 생활이라 밤에도 걔네가 자는 모습을 그대로 봐야 했다.


나는 둘째에게 말했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수학 머리를 가진 아이가 있을 수 있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대신 공부는 남을 이기기 위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성장을 위한 거라고.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공부는 결국 수행 같은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버티고, 참고,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 격려하고 설득했지만, 고작 열세 살 아이에게 그 말들이 얼마나 위로가 됐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아이보다 나 자신에게 해 주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는 늘 이렇게 일희일비한다. 육아하면서 절대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는 원래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 매일, 아주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린다.


그럼에도 둘째는 기특하게도 툴툴거리다가 다시 도전한다. 겨울방학 동안 하루 11시간을 학원에서 공부한다.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고 했더니, 그래도 5월 KMO 1차까지는 끝까지 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기특하면서도 짠했다.


친구가 많지 않은 둘째가 학원 쉬는 시간에 혼자 나가 저녁을 사 먹는 모습을 보며, 남편과 나는 또 한 번 마음이 쓰였다. 혼자 먹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벌써 혼자 결제해서 밥을 사 먹는 게 웃기기도 했다. 저녁시간마다 카드 결제 알림이 오면 우리는 말한다.
“오늘은 덮밥이네.”
“오늘은 돈가스네, 잘 잘라먹으려나.”

그러다 또 한 번 웃는다.


지금의 결과가 무엇이든,
혼자 밥을 사 먹고, 다시 자리에 돌아가 문제를 붙드는 이 시간이
언젠가 둘째에게는 오래 남는 기억이 되기를 바란다.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끝까지 가 보려는 아이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니까.


아마 내일도 나는 또 흔들릴 것이다.
아이의 한마디에, 점수 하나에, 카드 결제 알림 하나에.
그러다 또 웃고, 또 마음을 다잡고, 또 하루를 보낼 것이다.


부모라는 자리는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잘하고 있는지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오늘도 아이 옆에 서 있으려고 애쓰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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