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에 써둔 글을 발견했다. 미국으로 오기전, 코로나 바이러스를 알기 전, 가장 기대감에 차있던 그 때 쓴 글. 내가 쓴 글이 맞나 싶게 낯선 나의 글이었는데 지금 읽어보니 'Stay at home'하는 현실과 아주 괴리되면서 재미있다. (사실 좀 슬프다.) 이 중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지는 다음 글에 정리해봐야지. 현실에 맞게 줄이고 줄여 꾼 꿈 중에 과연 얼마나 이루면서 살고 있는걸까.
우리나라가 아닌 곳에서 한번쯤 살아보고 싶었던 나와 6년간의 회사생활 동안 한 번도 여름휴가를 가보지 못한 안쓰러운 남편에게(더불어 결혼 이후 같이 여름휴가를 빼앗긴 나에게도...) 미국에서의 1년은 짧지만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내가 미국에 가면 가장하고 싶은 일은 여행이다. 아기가 없었다면 정말 쉬는 날만 생기면 가방하나 들쳐 매고 어디론가 떠났겠지만 우리 아기가 함께이다보니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큰 여행은 거의 못 다닐 것 같다. 남편은 NBA직관을 꼭 하고 싶어 한다. 이것도 아기가 없었다면 NBA팀이 유명한 도시마다 다니며 같이 보러 다녔겠지만, 우리 아기의 청력을 위해 직관은 남편 혼자가든지 아니면 동네 친구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아기와 함께 떠나는 미국 유학생활을 위해서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 사실이 많이 아쉽기도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의외의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아기와 함께하는 유학생활에서 찾은 첫 번째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일은 미국식 돌잔치이다. 미국의 돌잔치(first birthday party)는 엄마들이 각자 취향에 맞는 컨셉을 정해 파티를 기획하는 형식이라고 한다. 남자아기들 돌잔치 사진을 찾아보니 농구공 컨셉, 스타워즈 컨셉 등등 재미있는 파티가 많았다. (찾다보니 그냥 한국에서 돌상 대여하는 게 백만 배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리고 우리나라 돌잡이처럼 상징적인 행사로는 ‘케이크 부수기(cake smashing)'가 있다고 한다. 첫 생일케이크를 아기가 손으로 뭉개 얼굴에 묻히고 먹는 거란다. 미국은 돌만 지나도 아기음식을 따로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문화 같다. 미국에 사는 우리나라 엄마들의 블로그를 보면 케이크는 사진만 찍고 아기는 절대 못 먹게 한다. 나도 그럴 것 같다. 남편과 함께 내년 5월, 우리 아기의 생일이 될 때까지 나는 학교에서, 남편은 동네 도서관 baby time에서 친구들을 열심히 사귀어 아이의 생일파티를 해주자고 약속했다.
두 번째는 미국 명절 챙기기이다. 크리스마스(12월 25일), 독립기념일(7월 4일), 할로윈(10월 31일), 추수감사절(11월 셋째 주)이 지금 주요 목표이다. 크리스마스에는 마트에서 판다는 진짜 나무 트리를 사서 아이의 첫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줄 거다. 독립기념일에는 동네 인근의 불꽃놀이를 아이와 함께 보러 나가려고 한다. 할로윈은 가장 기대가 크다. 우선 가을이 시작되면 인근 농장으로 ‘호박 줍기(pumpkin patch)'를 하러 가려 한다. 주변 농장들에서 ’잭-오-랜턴(Jack O"Lantern)‘을 만들기 위한 호박을 판매하고, 가면 아기들이 뛰어놀 수 있는 너른 농장도 있다고 한다. 아기와 함께 미국에서 맞이하는 할로윈인 만큼 같이 잭-오-랜턴을 만들고 집 앞에 불을 키려 한다.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를 사서 맛있는 한 끼를 만들어 먹으려 한다.
마지막으로는 동네 도서관, 수영장에서 우리 아기의 첫 친구들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미국은 공공도서관이 지역마다 잘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 이사 가는 동네의 도서관을 찾아보니 아기, 청소년,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주 다양하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 문화센터와 비슷한 baby time을 꼬박꼬박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생후 4개월 정도부터 수영을 가르친다고 한다. 말이 수영이지 찾아보니 엄마, 아빠와 함께 물속에서 적응하는 수준의 수업인 것 같다. 동네 수영장에서 아기를 위한 수영교실도 열심히 다니려고 한다. 아무래도 아기가 있으면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에게 더 말 걸기가 쉽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영어로 한마디라도 더 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까지 내고 있다.
아기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다보니 처음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많은 일들 보다 미국의 일상에 가까운 일들이 많다. 매일 아기와 동네 공원을 산책하고, 주말이면 동네 호수에 놀러가 아기와 물놀이를 하는 그런 삶. 미니밴에 캠핑의자와 아기 장난감을 싣고 동네를 누비는 그런 삶.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그 일들이 우리의 하고 싶은 일이 되어버렸다. 떠나기 전 꿈꾸는 이 모든 일들이 앞으로의 시간에 켜켜이 쌓여 우리의 소중한 1년을 만들어주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