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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ul 07. 2020

미국에서 코로나를 만났을 때-엄마아빠편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뭔가에 홀린 듯 카리브해 크루즈 여행을 예약했다. 한국에 돌아오기 직전 중남미의 햇빛을 즐기다 오자는 취지였다. 미국에 와보니 미국 동부에서는 멕시코 여행이 필수란다. 엄청나게 싸다! 칸쿤으로 4박 5일을 떠나는데 3가족이 2,000달러밖에 들지 않았다. 일단 질렀다. 여행을 예약할 때의 쾌감은 정말이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리고 3월, 우리는 모든 여행을 취소했다.


전 세계 모두가 겪는 그 코로나, 미국에서는 COVID-19,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애초에 돌쟁이 아기와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계획이 무모했을 수 있다. 그런 이유는 뒤로 하고라도, 21세기에 전염병 때문에 중남미의 뜨거운 햇살을 포기해야 한다니. 취소금액이 입금됐다는 메일을 받고 진짜 유학생활 돈 아껴서 잘하고 간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눈물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 집에 있다. 확진자 세계 최고인 이 곳에서 어지간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할 수 있을 거라 꿈꿨던 나의 미국 생활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


봄방학이었던 3월 중순에 학교에서 전체 메일이 왔다. 봄방학 1주일 연기와 남은 봄학기 수업을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한다는 연락이었다. 이제 막 학교에서 인사하는 친구도 생기고, 수업시간에 쭈뼛쭈뼛 말도 꺼내기 시작했는데 온라인 수업을 듣게 됐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겠다는 부푼 꿈은 화상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 느낌이 되었다. 남편이 다니던 어학원도 화상 수업으로 모두 전환됐다. 하루에 6시간이 넘게 방안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경험을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한국에 계신 엄마는 인터넷 강의 들으러 미국까지 갔냐며 깔깔대며 놀리셨다.


한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학교 사람들이 그 혼란한 틈에서도 ‘이번이 새로운 강의방식을 도입하는 기회!’라고 끊임없이 강조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나는 인터넷이 익숙한 세대라서 불편하더라도 어떻게든 시도해볼 수는 있는데, 컴퓨터 사용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노교수님들은 봄학기 수업을 무사히 마무리하기 위해 교수님들끼리 모임을 하기도 하고, 젊은 교수님한테 수업도 들으면서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공부하셨다. 학교에서도 Zoom과 연계해서 넉넉히 서버를 마련하고, 봄학기 시작 전에 계속 시범강의를 마련해서 기술적인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 달 반 정도 이어진 화상 강의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대학원 수업인지라 한 강의에 10명 남짓한 학생들만 있었고, 어디서든 말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미국의 문화라는 특수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수업은 학생들 참여도가 얼마나 높은지 진짜 토플 영어 듣기 하는 기분이었다. 나이 지긋하신 교수님들도 Breakout Room 기능처럼 신기술을 활용해서 어떻게든 뭔가 의미 있는 수업을 만드시려고 노력하셨다. 수업 내용도 기존에 있던 커리큘럼에 더해 세계적 유행병이 앞으로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즉각 반영되곤 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유행 당시 발간된 논문들, 새롭게 쏟아지는 논문들을 끊임없이 주시고,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토론에 토론이 이어졌다. 기대보다 훨씬 유익한 시간이었다. (물론 지루한 강의를 들을 땐 오랜 시간 쌓아온 숙련된 스킬로 딴짓을 하곤 했다.)


학교가 이렇게 되다 보니 나는 남편과(아들도) 본의 아니게 24시간 같이 생활해야 했다. 함께한 지 10년 가까운 시간 중에 이렇게 붙어 있던 적은 처음이었다. 남편의 지긋지긋한 야근 때문에 결심한 유학 생활이었는데 그렇다고 24시간은 좀...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못 만나니 둘이서 뭐라도 하고 놀아야 했다. 사실 하루하루 안 싸우면 다행일 정도로 코로나 발발 이후 지난 2달이 가장 자주, 격하게 싸운 시기였던 것 같다. 긴 시간 알아왔는데 싸울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정말 많았다. 지금은 어떤 일로 싸웠나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사소한 사건들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잔소리가 많다고 화를 내고, 남편은 내가 수업을 듣느라 정신이 없어서 집안일에 소홀하다고 화가 났다. (아마 맞을 거다. 지금은 왜 싸웠는지 도통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여튼 그렇게 싸우다 지금은 거의 초탈한 부부처럼 서로 절충점을 찾았다. 코로나바이러스 덕분에 압축적인 부부생활을 경험한 것 같다. 친정 부모님의 삶의 여정에 비추어 보면 아버지가 퇴직하신 후 집에만 계시면서 겪었던 일들을 미리 겪는 느낌이랄까.


코로나 시대에 열심히 싸우면서 열심히 노는 법도 개발했다. 아파트 베란다(여기서는 Patio)에서 맥주도 마시고, 아이 놀이터도 만들어 줬다. 다행히 집 앞에 청설모와 새도 많고, 아파트 단지 안에 산책로가 예쁘게 조성되어 두 달 남짓한 주정부의 ‘Stay at home’ 명령 발효 기간을 무사히 견뎠다. 특이한 점은 ‘Stay at home’ 기간에도 산책로(trail)와 공원은 폐쇄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유는 다수의 사람이 밀집해서 머무르는 장소가 아니고 코로나바이러스 예방에 체력증진이 필수이기 때문이라고(잉?) 했다. 아파트 바로 앞에 산책로가 있어 아침 일찍이나 평일에 마스크를 끼고 살살 산책도 다녔다. 육퇴 후에는 넷플릭스(만세!)와 시리즈 영화 정주행으로 마음을 달랬다. ‘슬기로운 생활’ 시리즈, ‘해리포터 시리즈(HBO Max에서 시청할 수 있다)’ 아니었으면 정말 괴로웠을 거다.

Patio Life. 놀이터 뷰라서 종종 저러고 있으면 동네 아이들이 "Hi!"하고 지나간다.

‘Stay at home’ 명령이 ‘Safer at home’으로 바뀌면서 조심조심 외출을 시작했다. 그냥 냅다 산과 호수, 강으로 다녔다. 주립공원은 정말 최고의 대피처였다. 내가 사는 주는 면적이 우리나라만 한 곳이다. 물론 사람은 훨씬 적다. 처음엔 주립공원에도 사람들이 많을 텐데 정말 괜찮을까 걱정했지만, 주차장에 차는 빼곡한데 숲이 얼마나 넓은지 산책로를 다 돌도록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적도 있다. 아이는 등산배낭에 탁 태우고 비포장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나면 그래도 마음이 상쾌해진다. 물놀이도 못 하고, 꿈에 그리던 공원에서 해 먹는 바베큐도 불가능하지만, 마음 편히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다.

주립공원. 산책길. 아파트 정원 전경. 이 풍경 덕분에 그래도 버틴다!

마음은 항상 불안하다.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무리의 사람들을 보거나, 매일 수직으로 상승하는 미국의 확진자 숫자를 볼 때, 믿을 수 없을 만큼 뭔가 어설픈 행정 대응을 볼 때. 하필 ‘이 시국’에 미국에 있어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 속상하다. 그러다가도 넓은 땅덩어리의 혜택으로 조심만 하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이 환경이 굉장히 고맙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이 상황 속에서도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최대한 재미있게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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