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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ul 10. 2020

머무는 사람과 흘러가는 사람

미국에는 누가 살고 있나

미국에는 세 분류의 사람들이 있다. 머무는 사람들, 흘러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

      

나는 흘러가는 사람이다. 대학원 과정 1년을 이수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래서 미국 생활이 현실과 동떨어져 휴식과도 같다. 이곳에서는 집, 차, 대형가전 등 오래도록 써야 하는 물건을 사지 않아도 되고, 대출이나 직장같이 인생에서 제일 골치 아픈 일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한국 계좌에서 끊임없이 빠져나가는 이곳의 생활비와 학비는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미국에서의 나는 여름의 파란 하늘과 푸른 풍경에 취해있을 뿐이다. 라디오에서 미국의 사회문제가 연일 보도되어도 나는 네이버 초록 창에 올라오는 우리나라 뉴스에 귀가 더 쫑긋한다. 이곳의 문제는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고민하고 해결하겠지. 하는 맘이랄까.


내가 만난 사람 중 제일 복잡하게 사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머무를지 말지 불확실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내 주위에는 대부분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이나 Post Doctor 과정을 밟으면서 미국에서 취업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어떤 친구들은 그 과정에서 미국 시민권자와 결혼해서 취업 여부와 무관하게 배우자 영주권을 취득한다. 안정적으로 미국에서 머무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어떤 친구는 중국인 유학생 부부로 남편은 취업비자(H1B), 부인은 연구원 비자(J1)로 각자 일을 하면서 미국에서 사는 도중 코로나 사태로 비자 문제가 꼬여버렸다. 미국에서 지금 하는 일을 잘 마무리하고 미국이든 본국이든 천천히 본인들의 미래를 정하고 싶어 했는데 비자갱신에 문제가 생기면서 본국에 돌아가면 다시 미국에 들어오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물론, 이들은 고학력에 영어도 문제없는, 아주 평탄한 부류에 속한다. 먹고 살기 위해 목숨 걸고 미국으로 건너와 영어 한마디 하지 못하는 수많은 중남미 출신의 불법체류자들이라든지 더 복잡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 많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영어도 잘하고 고학력인 사람들도 미국에 머무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불확실성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를 계기로 그 불확실성은 더더욱 극에 달하고 있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다양한 인종의 미국 사회. 어떤 사람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 미국으로 이주를 와서 완전히 정착한 사람들이고 어떤 사람들은 이민 1세대로 스스로 선택해 정착한 사람들도 있다.


여담이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또 나름의 머묾과 떠남이 있었다. 나라가 워낙 크다 보니 이사가 거의 이민과도 같다. 주별로 기후, 지형, 법, 세금 제도 등등 거의 모든 것이 다르다 보니 주를 넘어 이사하는 것은 미국인들에게도 정말 큰 일이라고 한다. 내가 사는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주는 미국에서도 일자리 때문에 미국 내 이주자가 많은 도시라고 한다. 남편의 달리기 친구는 부인의 일자리가 이곳에 정해져서 캔자스시티에서 이사를 왔다고 했다. 학교에서 만난 메릴랜드 출신의 사라는 일자리를 찾아 콜로라도에 갔다가 날씨가 너무 안 맞아서 이곳으로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고 했다. 아직 서부에서 동부로 이사 온 사람은 만나지 못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여기까지 비행기로 6시간 걸리는 거리니 아주 큰 마음을 먹고 정착지를 옮겨야 할 것 같긴 하다.


미국에 와서 자신이 스스로 살아갈 삶의 터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나는 언론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을 들어도 ‘에이, 이놈의 헬조선 탈출해야지!’ 라고 하지만 사실 한국을 영원히 떠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나는 태어난 나라를 떠나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남는 질문들이 있다. 자신이 태어나 그 사회와 문화가 익숙한 나라를 떠나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는 계기는 뭘까. 데, 이곳의 수많은 이민자는 무엇을 피해 혹은 무엇을 원해 여기까지 온 걸까.


자신의 본국을 떠나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의 엄마 멜로디 아줌마는 1살 때 부산에서 버려져 미국으로 입양되었고, 윗집 부부는 본국의 종교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왔다고 한다. 학교에서 만난 교직원분은 미국에서 안정적인 직장도 구해지고, 아이의 교육을 위해 정착하기로 했다고 했다.

본국을 떠나는 이유는 수만 가지인데,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다. 이민자들이 워낙 많아서 자신의 존재를 크게 드러내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시작부터 이민자들의 역사였고, 나라의 발전에 수많은 이민자가 있었다. 그런 배경 덕분에 미국은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 아닌 이상 정말 많은 인종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우리 아파트 한 동만 봐도 여섯 가구 중에 세 가구가 이민자와 유학생이다. 학교 교수님들도 러시아, 대만, 영국, 인도 등 다양한 나라 출신 교수님들이 많으시다. 심지어 교수님 이력서에 자신의 국적을 표시하기도 한다. 인종차별이나 사회안전망 부재 같은 미국의 사회문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이민자가 몰려오는 이유는 이곳에 이미 정착한 수많은 이민자 때문일 것이다.


연일 비이민 비자에 대한 미국 이민국의 나날이 발전되는 규제와 요 근간의 인종차별 문제, 그리고 우리나라의 속 시끄러운 뉴스들을 보면서 이곳에서 한국의 삶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그저 흘러가는 사람으로 사는 지금에 관한 이야기를 적고 싶었다. 물론 요즘도 한국에서 날라오는 대출 계약 문제, 회사 문제, 아파트 분양 문제 등등으로 가끔 한국의 삶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머물러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다. 가끔은 머무는 사람으로 살았던 시간의 편안함과 안정이 그립기도 하다. 잠깐 쓰고 버릴 생각으로 싸게 산 중고 매트리스가 등에 배길 때면 신혼집 안방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 혼수로 산 넓찍한 매트리스가 눈에 아른거린다.


그래도 이렇게 한 번쯤은 머물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닌, 그냥 흘러가는 사람으로 사는 것도 좋다. 무사히 이렇게 잘 흘러가다가 다시 돌아가면 그땐 내가 살기로 선택한 바로 그곳에서 또 온 힘을 다해 버티며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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