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룰루 Jul 02. 2020

삼시세끼, 미국 시골 편

밥을 하고, 밥을 먹고, 먹은 걸 치우면 하루가 끝난다. 미국 생활을 시작하고 3개월은 삼시세끼 초보과정이었다면,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의 3개월은 하루하루가 밥과의 전쟁이었다. 나가서 사 먹을 수도 없고, 식재료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와중에 끼니 사이마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아들과 놀아주고, 산책도 하다 보면 시간이 참 잘 간다. 미국에 오면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굳은 다짐은 그렇게 삼시세끼 앞에서 무너졌다.


벌써 미국 생활의 절반이 지났다. 6개월을 여기서 살았고, 앞으로 6개월의 삶이 남았다. 지금까지 해먹은 끼니만큼 더 챙겨 먹으면 어플에서 클릭 한 번이면 아파트 현관문 앞에 ‘딩동’하고 맛있는 밥이 배달되는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지난 6개월 동안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아서 여기저기 끄적여놨는데 대망의 여름방학을 맞아 다시 글을 쓰려고 하니, 매일 뭐 해 먹을지 고민하던 것만큼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이 된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삶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아기를 키우는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가 가득한 일상일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시작은 밥이다.


패기 넘치고 가방 하나면 어디든 갈 수 있었던 나는 수많은 여행지에서 음식으로 고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유럽에 가면 한 달 가까이 빵만 먹고도 행복했고, 동남아에 가면 물갈이 한번 없이 길거리에 털썩 앉아 현지 음식을 먹곤 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은 세계화 시대 이전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정말 외국에서 살아보지 않은 티를 팍팍 내는 순박한 망상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지 3일 만에 피자와 샌드위치에 질려버려 된장찌개를 하는 나를 보면서, ‘아, 나는 한국인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사를 마치고 처음 한인 마트에 가던 날 500달러 넘게 장을 보고 할라피뇨가 들어간 순대국을 먹는데 깍두기랑 들깻가루가 얼마나 고맙던지 계속 감탄했다.

한식당에서 먹은 곱창전골. 정말 감동적인 맛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로는 한번도 가지 못해서인지 사진을 보니 더 그립다.

 

미국 시골에 살고 있지만, 한인 마트(그 유명한 H마트)가 차로 30분 이내에 있는 동네에 살고 있어 한국 재료들을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말 소문대로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닭똥집, 돼지껍데기, 냉동 낙지, 온갖 젓갈과 김치, 막걸리 등등. 한인 마트를 다녀오는 날은 보쌈이나 각종 나물이 들어간 비빔밥처럼 특식을 먹는 날이다. 항상 반주는 막걸리로.      


매일 가기엔 조금 멀어서 평소에는 가까운 마트에서 장을 본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Harries Teeter,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Farmers market에서 주로 장을 본다. 사실 미국 마트에도 없는 건 없다. 조금 달라서 그렇지. 우선, 다진 마늘을 살 수 없다. 마늘은 파는데 항상 곱게 껍질에 쌓여 있다. 한인 마트에서 사 온 다진 마늘이 다 떨어져서 한두 번 정도 미국 마트 마늘을 사봤는데 껍질을 까다가 지쳐서 그 이후로는 그냥 없으면 한식을 안 한다. 그리고 불고기용 (여기서는 샤브샤브용) 소고기를 찾기 어렵다 (우리 동네만 그런가?). 정육점 아저씨에게 여쭤봐도 기계가 없어서 그렇게 못 썰어준단다. 파, 배추, 고추, 무는 종류가 묘하게 다르다. 파는 Green onion과 Leek이라는 두 종류가 있는데 둘 다 우리나라 대파랑은 종류가 다르다. 배추도 우리가 먹는 배추는 Napa Cabbage라는데 마트에 잘 안 들어온다. 고추는 말해 무엇하리. 중남미 신기한 고추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청양고추 대신 다양하게 써보고 있다. 무는 한국 무는 없고, Daikon이라는 단무지 무처럼 생긴 것만 파는데 소고기뭇국을 몇 번 해먹어 봤더니 맛은 그럭저럭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해산물 종류가 너무 적다. 나는 그래도 바닷가가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동네에 살고 있어 산지 새우, 생선이 자주 들어오는 동네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종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대구도 스테이크용 필레만 팔아서 생선도 스테이크로만 먹는다.      

재료뿐만이 아니라 조리 방법도 우리나라와 미국은 매우 다르다. 한식은 끓이고 볶고, 손이 많이 간다. 근데 미국 음식은 어지간해서는 그냥 오븐에 넣어버리면 끝난다. 세상 편하다. 한식을 하면 오목한 국그릇 밥그릇, 반찬 그릇이 한가득 나오는데, 스테이크나 미국 오븐 요리는 접시 두세 개면 식사가 끝난다. 문제는 편하다고 미국식 스테이크를 한두 번 해 먹으면 또 매콤한 국물이 생각난다는 점이랄까.      

랍스타가 제철이라 저렴하게 랍스타를 먹는다. 그래도 부족해서 야식으로 컵라면을 먹어야 한다. 


우리 부부의 밥은 저렇게 다양한 시도 끝에 대충 삼시세끼를 해결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기 이유식이었다. 이제는 돌이 지나 우리랑 밥을 같이 먹어 번거로움을 좀 덜었지만, 아들내미의 중기와 후기 이유식을 모두 여기서 해서 먹여야 했던 터라 우리 삼시세끼에 더해 이유식도 준비해야 했다. 이유식 책과 블로그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아욱, 미역, 우엉, 부추 같은 한국인 특화 재료들은 그냥 깔끔하게 포기했다. 대신에 우리나라보다 싼 소고기 안심은 원 없이 먹였다. 대학원에서 만난 모든 아기 엄마들이 “왜 사 먹지 않는 거니?”라고 몇 번 물어봤지만, 그냥 내 고집이라면 고집이랄까. 진열대에 나를 보고 예쁘게 웃는 아기용 퓨레를 몇 번 유용하게 활용하긴 했지만, 왠지 매일매일 먹일 수 없었다. 한국과 이유식 문화가 너무 달라 끝날 때까지 적응할 수 없었다. 돌이 지난 지금도 간을 거의 하지 않고 밥을 주는 내가 미국에서 볼 땐 고집쟁이로 보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저그런 이유식 밥상이지만, 아들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잘 먹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미국 음식을 정말 내 밥처럼 먹을 수 있었다면 세상 어디보다 편한 곳이었을 것 같다. 아침 식사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도 많고, 종류도 아주 다양하고, 심지어 굉장히 맛있다. 마트에서 피자, 샐러드바, 델리도 잘되어 있어서 그냥 사다가 먹으면 아주 좋다. 집 앞 바베큐집 바베큐는 얼마나 맛있는지 내가 밥과 국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천국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밥과 국이 꼭 있어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집 앞에 있던 아구찜 가게와 소곱창 구이집이 그립다.      


열심히 삼시세끼를 해 먹다 보면 금방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이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삼시세끼를 매번 하면서 칼질을 너무 많이 해서 손이 아팠던 적도 있었고, 설거지하다가 화난 적도 많았지만, 세 가족이 매일 얼굴을 마주 보고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에 고마운 날들이 더 많다. 나와 남편이 회사에 다니던 시절엔 하루 한 끼 마주 보고 먹을 시간도 없었다. 주말이나 되어야 서로 얼굴 보고 밥을 먹었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도 남편은 하루에 저녁 한 끼 함께 먹으면 고마운 날들이었다. 그랬던 시간을 돌이켜보면, 매 끼니 밥을 하면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이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자, 그래서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학생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