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좁은 숙소를 빠져나와 아침을 배부르게 먹고, 켄싱턴 가든을 지나 배터시를 향해 걸어 내려오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내리쬐는 햇살과 완벽한 음악, 그늘로 들어서며 왼 편에 펼쳐지는 캔싱턴 가든 호수. 이 순간을 함께한다면 서울의 누구라도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잠시 떠나온 이방인만이 경험할 수 있는, 피할 수 없고 사치스러운 강렬한 행복감.
런던에 오기 전, ‘어렵게 들어온 좋은 직장 그만두어야 할까?’ ‘그만둔다면 다음 시간은 어떻게 보내야 하나?’ 하는 것은 아주 오래 고민해 온 주제였다. 주변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말고 이번에는 그냥 좀 쉬어라'는 분도 많았고 누군가는 다음 직장도, 모두 덮어두고 휴양지행 편도 티켓을 끊기도 할 것이다. 나는 그런 면에선 좀 재미가 없고 안정지향적인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선택이 그러하듯 언젠가 후회할 수는 있지만, 부담이 큰 만큼 내가 정말 원하는 모양의 시간을 꼼꼼히 설계해서 갖고 싶었다.
결정을 내리기 전 마지막 주말 혼자 불 꺼진 꽃집에서 멍하니 생각을 했다.
돌아보면 절실함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르겠으나 여러 번 저울질을 해 보아도 깨끗이 결정할 수 없었다. 지금의 회사, 그리고 다른 길을 찾는 방향. 머릿속의 나는 양갈래 길을 헤매다가 다시 출발선으로 수없이 되돌아왔다. 평생 고민만 할 수 없으니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전혀 다른 옵션이 없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다른 길을 선택함과 동시에 내가 아주 오랫동안 궁금해하기만 했던 것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이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나라, 관심 있던 학교의 숏코스 정도는 이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당연히 정규 학위와는 질적, 양적으로는 전혀 다른 경험일 것을 알지만 최소한 내가 여행자로서 해외 생활을 가볍게 누리는 자체를 좋아하는 것인지, 스트레스를 받고 비용을 쓰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배움이 즐거운 사람인지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