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조직 세팅부터 AI를 본격 활용하기까지
프리윌린에 조인하기 한달 전이었던 2023년 9월. ‘그러고 보니 다음 직장에서도 숫자와 친해져야 하네’하는 생각으로 틈틈이 문구류를 사모으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10월 이맘때쯤, 서울로 돌아와 파트를 세팅하며 새 동료가 될 분들과 옹기종기 사온 엽서를 나누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미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프리윌린이었지만, 시장 내 지위와 규모를 고려하면 한층 높은 그래픽 완성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즉, 매출과 직결되는 상세페이지와 광고 소재를 포함한 회사 전체의 비주얼 수준을 함께 끌어올려야 했다. 돌아보면 나도 AI의 흐름을 누구나처럼 느꼈겠지만, 현업을 막 시작한 신입 디자이너 두 분과 함께하는 작은 파트로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전사 로드맵이나 업무 요청 방식을 새로 정비하며 실무를 병행해야 했고, 동시에 파트원들의 디자인 스킬업과 온보딩도 무사히 이끌어야 했다. 그렇기에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실험이나 툴 교육 등을 실무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나의 우선순위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그러던 중 그해 말, 실무자로서 핵심 제품인 ‘매쓰플랫 홈페이지 리뉴얼’에 참여하게 되었다. B2B뿐만 아니라 B2G* 영역까지 아우르는 SaaS 제품으로 도약하는 시점이었고, 제품이 공교육 현장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서는 트렌디한 그래픽도 좋지만, 높은 연령대의 교육자분들도 바로 공감할 수 있는 '한국 선생님과 한국 학생의 인물사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웹, 태블릿, 모바일, 프로모션 등 복잡하고 다양한 레이아웃에 차질 없이 인물을 담기 위해 즉시 작은 팀이 꾸려졌다. 프로페셔널한 마케팅팀의 영상 PD 동료분은 에이전시를 수배하고, 적절한 모델을 기용하고, 예산까지 세팅하여 포토그래퍼분과의 디테일한 촬영 준비를 마쳤다. 나는 짧은 촬영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레퍼런스 이미지와 이후 활용 예제 등을 포함한 촬영 가이드를 짜는 보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촬영 당일이 되어 마케팅팀의 쌤들, 우리 파트의 팀원들, 사내 일일 모델 쌤들, 미술팀, 메이크업팀 분들과 하루간 고된 촬영을 진행해 사진을 얻어낼 수 있었다.
*B2G : 정부 기관이나 공공기관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고 거래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그로부터 2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이지만, 돌아보면 당시 단 몇 장의 완성도 있는 사진을 위해 매우 많은 사람의 에너지와 시간-즉 ‘비용(≒resource)’이 들었다. 홈페이지처럼 중요도가 높은 곳에 노출될 모델을 AI만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생성한다는 것은 그때 조금 어색할 것이라고 판단했으니까. 물론 미친 듯한 기술 발전이 이루어진 지금도 실제 원하는 로케에서 실제 모델을 촬영한 것과 생성된 이미지 사이의 디테일 간극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비용을 따져 생성형 AI를 더 적극 활용하는 것이 어떤 이유로든 더 효율적이고 나은 선택이라면? 1~2년간의 짧은 시간동안 그에 대한 의사결정을 Yes/No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을 만큼 AI 기술도 우리의 활용 방식도 많이 달라져 버렸다.
그리고 24년도 초, 브랜드디자인 파트는 새로운 팀원의 합류로 한층 든든해졌다. 프로모션 디자인과 가이드 작업에 경험과 강점이 있는 팀원이 들어오며, 비즈니스 특성상 잦은 프로모션 과 상세 페이지 디자인 시스템에도 효율이 붙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각각 더욱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맡거나 새로운 것을 배울 숨 쉴 틈(?)을 갖기 시작했고, 더불어 기존 신입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속도와 품질도 자연스럽게 빨라지고 좋아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팀원이 Firefly 활용 강의를 직접 신청해 듣고 왔다. 당시 나로서는 Firefly를 포토샵에 탑재된 기본 프롬프트 기능으로만 활용해 오고 있었기에 강의 내용을 간단히 공유받을 수 있을지 요청했고, 팀원은 아주 핵심만 짚어서 효율적인 활용 방법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와 거의 동일한 시기, 늘 디자인 이야기를 나누는 방송국의 시니어 디자이너를 통해 '요즘 AI 툴이 너무 많이 쏟아진다. 네가 빨리 잘 배우니까 배워서 나 좀 알려줘'하는 말을 들었다. 사실 잘 모르는데도 괜히 불이 붙어, 배워서 빨리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날 이후 약 2주 동안, 당시 가장 활용도가 높다고 알려진 툴 3-4가지를 추려 집중적으로 테스트했다. 어차피 짧게 잡은 기간이니 주말엔 이런저런 실험으로 시행착오를 미리 겪고, 출근 후 바로바로 현업에 테스트하는 패턴을 가졌다. 그리고 어차피 같이 배워야 실무에 도움이 되니 동시에 팀원들을 대상으로 생성형 이런 AI 도구들을 활용하기 위한 '쁘띠 세션(작고 부담 없는 세미나)'의 준비도 병행하기 시작했다.
매일 정신없이 돌아가는 실무 속, 꼭 AI가 아니어도 ‘새로운 툴이나 기술 배우기'는 comfort zone에서 펄쩍 벗어나야 하는 번거로운 영역처럼 느껴진다. 사실 시작하면 금방 배우고 적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짧게는 몇 년부터 길게는 학생 때부터 10~20여 년을 써온 익숙한 것들이 있으니까. ‘지금 시작하면 언제 실무에 쓸 수 있으려나?’ ‘이렇게 툴이 쏟아지는데 대체 뭐부터 해?’하는 마음들이 부끄럽지만 내 안에는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다행히, 내 곁의 적극적인 동료와 가끔 나를 긁는 지인 디자이너들 덕에 어찌저찌 그 편안함을 벗어나 실무에 적용하기 위해 가르쳐도 보고, 조직 내에서 크고 작은 시도도 해보며 여러 지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시기를 놓쳤더라면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 많이 미뤄졌을 것이고 이미 가속이 붙어 우수수 쏟아지는 기술들에 대해 접근할 기회도 조금은 늦어졌을 것이다.
+ 그렇지만 비현실적으로 수많은 툴이 쏟아져 나오기에 괜스레 지치고 버거운 것은 사실이다. Toolify를 살펴보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AI 관련 툴이 있는지를 알게 된다. 네이버페이 전상호 리더님의 지난 강연 말씀을 빌리자면 한 달에 AI 앱은 최소 300여 개씩 늘어나며 25년도 5월 기준, 이미 대략 2만 5천여 개의 생성형 도구가 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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