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선생님과 세번 째로 둘러본 도시는 취리히다. 일찌기 츠빙글리에서 시작한 종교개혁을 경험한 스위스의 이 도시는 13세기 비단무역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그 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면직물, 염색공업을 발달시켰고, 주변 강, 호수의 풍부한 물을 이용하여 중화학공업을 육성하였다. 농민들의 농한기 부업으로 시작된, 시계로 대표되는 정밀가공업은 이미 1800년대에 세계최고 수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산업화를 추구했던 대부분의 유럽 도시들처럼 취리히도 환경오염문제를 피해가지는 못해서 문제를 겪던 중, 20세기 들어 생태적인 농업으로의 전환과 금융중심의 산업으로 산업구조가 재편되었다. 현재 40만의 인구 중 4만 5천명이 은행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스위스하면 떠오르는 비밀금융계좌도 이러한 금융의 커다란 일부인데, 실명 없이 번호로만 거래되는 이런 계좌들은 범죄나 전세계 독재자들의 비자금과 관련된 조세 피난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이 도시는 암스테르담처럼 자유와 관용을 중시하는 교육, 문화, 예술의 중심이기도 해서, 50여개의 박물관과 200여개의 미술관, 화랑을 가진, '야누스적인 도시'라고 일컬어 지기도 한다. (현대의 어느 도시나 문명이 이런 이중성에서 자유로울까?) 페스탈로치와 게오르그 뷔히너가 이 도시 출신이고, 바그너,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제임스 조이스, 베르톨트 브레히트, 토마스 만 등의 혁명과 예술을 꿈꾸던 망명객들을 품은 도시이기도 하다. 일찍이 영세 중립국을 선언하고 주변국들로부터 이를 승인받은 것는 이 도시가 가진 이런 경제력과 저력 덕분일 것이다. (러일전쟁 때 고종이 선언한 중립국 선언이 주변국들에 의해 철저히 무시당한 사례는 우리에게 아픈 역사적 교훈으로 남는다.) 윌리엄 텔과 하이디, 퐁뒤의 취리히를 뒤로 하고 다음 주는 스트라스부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