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극

다방

by Kyuwan Kim

다방의 창으로 들여다 본 격동의 50년 한국 현대사... 극단 백수광부가 25주년 기념공연으로 국내초연작 '다방'을 무대에 올렸다. 한국 현대사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는데 놀랍게도 '낙타상자'를 쓴 중국작가 라오서 원작의 '찻집'을 번안한 공연이다. 지난했던 근대화 과정에 그만큼 한국과 중국이 비슷한 점이 많았다는 뜻일까? 종로의 한 다방을 배경으로 1938년 일제강점기, 5.16 직전의 1961년, 올림픽을 앞둔 1988년의 시대를 그리고 있다. 민족주의적 색채를 가진 양반들, 일제에 부역하는 반민족 세력, 개화한 신지식인, 20원에 딸을 팔아넘기는 민중, 순사, 깡패 등 나름대로 그 시대의 전형성을 살린 인물과 그들 사이의 묘한 긴장과 갈등이 생생하게 묘사 된 1938년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런 생생함은 역사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연극만의 특장점이리라.)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변신을 거듭하여 살아남은 인물들과 그 2세의 이야기로 나름대로 정교하게 이어지는 다음 세대 장면들도 흥미롭다. 세대와 역할을 바꿔가며 아역에서 노역까지 수많은 배역을 소화한 (거의 대하 드라마 수준!) 배우들의 연기의 합에도 큰 박수를 보낸다. 다만, 원작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격동의 시대가 등장인물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지 못하고 그냥 배경으로 흘러간 점이나 다방의 주인 한성덕의 죽음이 잘 설명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쉬웠고, 1988년 이후의 화면들은 군더더기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피곤한 평일 저녁 125분이라는 시간에 값하는 좋은 공연이었다. 전석매진이라는데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와 더 많은 관객을 만나면 좋겠다. 30년 쯤 후에 역사는 2021년을 어떤 연대로 기억하게 될까?

4/25일까지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 소극장 #극단백수광부 #연극다방

keyword
작가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