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지 10년이 넘은 작가의 지난 글들이 다시 출간되어 베스트 셀러가 되는 일은 분명 흔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작가 박완서가 오랜 기간 동안 써온 에세이 35편이 한 권의 책으로 새로 묶였다. 그녀의 글을 찾아 읽어온 독자라면 어디선가 읽어본 듯, 아닌 듯한 글들인데,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에 쓰여진 글임에도 다시 읽는 글들은 예의 그 예민한 감수성과 푸근한 글 맛으로 빛을 발한다. 글을 쓰는 마음가짐, 아이를 키우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온 이야기, 자신이 몸담은 공동체에 대한 건강한 관심과 비판, 나이 들수록 선명해지는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 참척의 고통과 이후의 치유, 나이듬과 평화로운 ‘소멸’에 관한 생각 등 다양한 주제의 글들은 결국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도리와 지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실 몇 달 전에 구입해 놓은 이 책을 이제야 다 읽은 것은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기 때문인데, 독실한 신자가 성경에서 얻는 치유와 위로가 이런걸까? ^^ 노인이 한 분 돌아가시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고 한다. 1931년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거쳐 고도의 경제성장기와 민주화 시대를 살아온 그녀의 기록은 그대로 우리 현대사의 풍속의 역사이자, 글 쓰는 여성의 생존기록으로서 한국 여성주의 역사의 일부일 것이다. 글을 읽으며 글이 쓰여진 정확한 연대를 알고 싶었는데, 책 뒤에 정리된 에세이 출처 목록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책들이 재출간된 것들이라 알기가 어려운 점이 아쉬웠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