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노래처럼 말해줘... 데뷰 57년차 여배우의 1인극에는 많은 무대미술이 필요치 않았다. 그저 피아노 한 대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막과 화장대 하나, 거울 하나... 영화 페드라의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흑백의 라스트신으로 열린 무대는 배우의 무대여정 60년을 때로는 연기로, 때로는 관객과의 대화로 펼쳐 보여준다. 그녀가 그 동안 무대에서 보여준 역할은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차지하려고 그 남자를 우물에 가두어 죽여버린 엄마, 카페에서 노래하는 늙은 창녀, 남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총으로 쏴죽인 아내, 아기를 낳자마자 탯줄로 목을 졸라 죽인 아그네스 수녀의 비밀을 감추려는 원장수녀, 스무살 어린 남자에게 모든 걸 던진 배우' 등등이다. 연극의 부제에서 드러난 것처럼, 극의 중간중간에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배우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생각들을 풀어놓기도 하고, 그녀의 시그니처라 할 중저음의 그윽한 목소리로 몇 곡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이제는 한국연극의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배우. 그녀의 목소리 하나, 작은 몸짓 하나도 무대에서는 그저 연극이 된다. 관객을 0순위로 늘 짝사랑 해왔다고 그녀는 고백하지만, 그것이 단지 짝사랑이 아니었음을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객석이 잘 증명해 주고 있었고, 그렇게 행복한 예술가는 관객들과 더불어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내년에 80이 되시면 다시 '19 그리고 80 (해롤드와 모드)'으로 무대에 오르신다고 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그 사람의 모든 걸 설명한다고 생각해요. 얼굴, 몸짓, 감정, 그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것까지. 그렇다면 일흔 아홉 살이 되면 선택은 두 가지에요. 죽든지 아니면 여든 살이 되든지. 틀어막을 게 하나도 없이 구멍난 배에 타고 있는 나이 같지만, 여든 살의 연극배우가 얼마나 할 일이 많은지 때때로 나는 생각해요. 무대를 버리고 남은 재능 속으로 사라지는 것과 계속 살아남아 끝없이 자신을 들어올리는 것, 어느 쪽이 옳을까." 2/16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