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Kyuwan Kim Aug 20. 2022
독서 모임에서 ‘박완서와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로 다섯 번의 모임을 가졌고, 이제 마지막 한 번을 남겨두고 있다. 그동안 세 편의 장편을 포함하여 다수의 중단편 소설들을 읽었다. 더러는 전에 읽은 작품을 다시 읽기도 했고, 어떤 것은 30년도 더 이전에 쓰여진 작품을 처음 읽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갖게된 다양한 느낌을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몇 자 적어두려 한다.
우선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보다 소설이 재미있다는 점이었다. 8~90년대는 물론 멀리는 70년대에 쓰여진 소설들인데도 지금 이 시점에서 읽어도 충분히 의미있게 읽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당신의 소설이 쉽게 읽힌다는 일부의 평에 대해 저자는 생전에 쉽게 쓰기 위해 스스로는 많이 고민한다는 말씀과 함께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하셨다. 그런데 이런 재미와 더불어 그녀의 소설은 인생의 어느 대목에서 필요한 교훈이나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격동하는 현대사와 함께 지내온 한 작가가 어머니같이, 혹은 할머니같이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세상살이의 순리랄까? 이런 대목을 만날 때 마다 오래된 글들의 여러 페이지에 나는 밑줄을 그었다.
또 하나, 그녀의 소설은 한국 현대사의 풍속에 대한 기록으로도 큰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휴대폰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속히 디지털화하는 문명에 따라가느라 허우적대는 우리들에게 그녀의 소설은 결코 낯설지 않은 80~90년대의 삶의 풍속을 소환한다. 공중전화를 쓰기 위해 길게 줄을 서던 일, 앞 사람의 통화가 너무 길어질 때 짜증스러워했던 일, 10원 짜리 동전을 계속 넣어야만 공중전화가 끊어지지 않았던 일... 이런 풍속은 비단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소설들은 당대의 결혼에 대한 인식, 남아 선호, 미제 물건에 대한 선호 등 지금과는 사뭇 다른 가치관들은 낯설게 드러낸다. 세상과 더불어 우리의 인식도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장애인 문제, 여성 문제, 중산층의 속물성 등 그녀의 중단편 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의 다양함도 놀라웠다. 사실 우리가 ‘박완서 문학’이라고 통칭하지만 실은 그것이 40여년간 꾸준히 쓰여진 것이고 보면 주인공의 사회적 계층이나 세대, 주제, 소재 면에서 다양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늘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의 이야기들에 눈과 귀를 열고 치열하게 관찰하고 묘사했을 것이다. 그녀가 데뷔작 ‘나목’에 이어 20대 초반의 한국전쟁과 가족의 죽음을 늘상 변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중단편 소설집을 많이 읽어 보면 좋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