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Kyuwan Kim Aug 23. 2022
글을 쓰는 작가라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번 독서를 통해서 국어의 바른 사용과 상황에 적확한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알 듯 말 듯 한 단어를 찾기 위해 내가 외국어사전이 아닌 국어사전을 모처럼 뒤적거린 것도 모처럼 경험하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가령 이런 단어들이 주는 느낌은 얼마나 아련하게 한국적인가? 횃댓보, 물역가게, 고린전, 금시발복, 사로잠, 호콩, 가긍하다...
요즘은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담론의 하나가 되어버린 상황이지만, 불과 몇 십년 전만해도 한국사회가 얼마나 압도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였는지는 그 시대를 통과한 사람이라면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1931년생인 작가가 다섯 아이를 낳아 기르고 막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40세에 이르러서야 문단에 데뷔하고 그 이후 꾸준히 글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한국 현대 페미니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요즘 서구의 페미니즘 이론으로 무장한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는 촌스럽고 엉성하기 이를 데 없을테지만, 그녀의 소설에는 소박하게나마 성차별적인 법과 제도, 인습에 대한 그 시대의 문제의식이 드러나 있다. 그녀의 인생에서, 어쩌면 그 출발은 전쟁통에 오빠를 여의고 살아남은 그녀의 귀에 꽃힌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나목, 세계사, p.302)
마지막으로, 작고하시기 직전까지 손에서 펜을 놓지 않으시고 언제나 현역이셨던 작가의 모습도 후배 작가들에게는 좋은 모범이 되리라 생각한다. 수많은 한국 소설 중에 노인이 주인공인 소설이 몇 편이나 있을까? 자신의 육체적 나이듦, 어쩌면 죽음까지도 온전한 정신으로 지켜보며 글에 담아내고자 했던 그녀의 작가정신에 놀라움과 더불어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굳이 이런 독후감이 필요 없을 만큼 그녀의 소설과 에세이들은 이미 많은 독자와 문학연구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래서 현재까지도 독서계에 끊임없이 재소환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오늘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지금의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새롭게 그녀의 책들을 펼쳐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