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이야기

by Kyuwan Kim

한국 근대문학 기행이라는 주제로 김남일 작가가 쓴 네 권의 책 중, ‘서울이야기’에 이어 ‘도쿄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네 개의 지역을 배경으로 한국 근대문학의 면모를 전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 듯 한데, 이 책에도 다양한 주제의 작은 이야기들이 스무 편 묶여있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와 일본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들이 하나의 실에 꿰어지는 듯한 느낌과 더불어 구체적인 ‘동경 유학생’과 연관된 사실 하나하나를 확인하는 읽기의 과정이 흥미로웠고,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최인훈의 ‘총독의 소리’, 박열, 나가이 가후 등, 글의 주제와 연관된 동서양의 작가와 인물, 책을 끌어들이는 솜씨로 보아 작가가 얼마나 많은 책과 자료를 뒤적거렸을지도 짐작이 갔다. 우선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광수, 최남선, 유진오, 최재서 등의 구체적인 활동과 발언들이다. 이광수의 창씨개명한 이름이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가 된 설명도 흥미로왔는데, 향산이 혹시 묘향산에서 따온 이름인가를 추적하던 저자는 그것이 일본의 천황의 신화와 연관된 것임을 밝혀내기도 한다. 관동대지진이나 징용과 관련한 일련의 사실들은 그 과정이 우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참혹한 것이었음을 보여주고 있고, 더 비극적인 것은 재난 이후의 도쿄 재건과정에서 동원된 사람들중 다수가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었다는 사실이다. 그 밖에도 일본어로 소설을 써야했던 조선 문인들에 대한 평가와 고민은 지난 번에 읽었던 '복화술사'의 문제의식을 잇고 있기도 하다. '도쿄의 절정'이라는 꼭지에서 저자는 일제의 진주만 공습 이후 '총후결전'의 광기로 치닫는 시대분위기 속에 1942년 11월에 열렸던 1회 대동아 문학자대회에서의 이광수와 유진오의 연설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의미 심장한 평가를 내놓는다. '그게 메이지 유신 이래 가령 저 엄청난 번역을 토대로 맹렬하게 구축해왔다는 일본의 인문학적 정신사가 가닿은 최대치였다.' 비슷한 시기 도쿄의 릿교대학에 입학한 시인 윤동주가, 짧은 도쿄 시절에 남긴 시 한편의 전문이 인용되어 있는데, 온국민이 알고, 사랑하는 시임에도 새롭게 큰 울림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1942.6.3)


다음에는 평안도로 떠나볼까?

(너무 긴 글 별로 안좋아하는데, 글이 길어 졌습니다. 죄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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