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는 못하지만 가끔 씩 콘서트홀에도 다니며, 오랫동안 클래식 음악을 들어왔다. 운전할 때도 주로 클래식 채널에 주파수를 고정해 놓는 편인데, 어느 날 밤, 10시에 하는 라디오 방송의 음악과 멘트가 귀에 쏙 들어왔다. 계절과 시간에 걸맞는 선곡, 늦은 밤에 어울리는 아나운서의 음색, 생각해 볼 이야깃거리들... 그 아나운서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알고보니 그는 시집을 출간한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고,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할 수준의 작곡가이자 연주가다. 저자는 이 책을 ‘고독 속에서 혼자 했던 놀이와 여행의 진료기록(?)’이라고 에필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카메라와 사진에 대한 애정, 비행기와 여행에 대한 열광,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대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빛바랜 기억들, 고독 속에서도 즐겁게 혼자 노는 시간을 늘려가는 이야기 등이 여섯 개의 꼭지로 묶여 있다. 시인이 쓴 문장답게 여러 번 되새기며 읽어야했던 대목도 있었지만, 지극히 사적이고 단정한 문장들이 맑고 투명하다. 빠듯한 직장 생활 속에서 자기만의 시간과 정체성을 찾고 싶은 직장인들이 읽으면 좋겠다.
사족. 앱 하나만 깔면 전세계 라디오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시대에 라디오를 한물간 매체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국 방방곡곡에 일대일로 또렷한 소리로, 음악으로 가 닿는 라디오는 여전히 강력한 매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책에도 ‘죽고 싶은 마음에, 집 앞에 차를 세우고 깊이 슬퍼하던 때 나의 목소리가, 음악이 구원이었다’고 사연을 남겼던 한 청취자의 에피소드가 소개되어 있다. 그 방송의 진행자로서 얼마나 뿌듯한 기억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