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동사의 멸종

by Kyuwan Kim

독서모임에서 '인간과 노동'이라는 주제로 넉달에 걸쳐 책을 읽었다. 19세기 프랑스와 20세기 영국의 탄광이야기, 미국의 계절 노동자 이야기, 알프스 자락의 농부 이야기에 이어, 마지막으로 우리의 노동현실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선정된 것이 '어떤 동사의 멸종'이라는 묘한 제목의 책이다. 이 책은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전화받다, 운반하다, 요리하다, 청소하다, 쓰다라는 장으로 구별되어 있는데, 각 장은 저자가 직접 경험한 콜센터, 택배 상하차, 뷔페 주방, 빌딩 청소 등 노동현장의 모습들이 마치 내가 현장에 있는 듯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네 가지 장소 모두 우리의 일상과 밀접히 연관된 곳인데, 저녁에 주문을 하면 새벽에 배송이 오는 놀라운 한국적 현실에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새삼 세세한 깨달음을 얻은 독서였다. 책이 술술 읽히는 것은 시원스런 풍자와 기발한 비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저자의 고유한 글맛 때문인데 그는 책의 곳곳에 자신이 오웰,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고전을 읽은 먹물(!)출신임을 감추지 않는다. 독특한 문체가 인상적이라 생각했더니, 저자의 전작 '고기로 태어나서'는 소재도 글의 강도도 이보다 한 길 위라고 하니 도전해 보는 것으로... 페이지마다 무수하게 등장하는 직업마다 미래에 사라질 확률이 높은 그 직업의 대체 가능성이 소숫점 두 자리로 기록되어 있으니, 지금 나의 직업의 운명을 각자 확인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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