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지역의 독립 서점을 둘러보기를 좋아하던 차에 작년 세밑, 일산에 있는, 한 시인이 운영하는 작은 책방을 방문하였다. 마침 그 날은 시인의 새 에세이집이 출간된 날이라 따끈따끈하게 쌓여있는 책도 한 권 구입하고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제주에서 50권 책주문이 들어왔다고 시인은 들떠서 책들에 서명을 했고, 마침 책방을 나오던 차에 나는 그 책들을 우체국까지 차로 운반해 주었었다. 알고보니 시인은 이미 일곱 권의 시집과 다수의 책을 출간한 중견 문인이었는데, 오늘 그 책을 다 읽었다. 진주 출신의 시인이 일산에 정착하게된 이야기, 시를 쓰며 책방을 운영하는 이야기, 책방에서 열린 강의며 낭독회, 문학강연 이야기, 호수가의 책방이 지금의 건물 2층으로 이사한 이야기, 책방에 들르는 고민하고 방황하는 동시대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들에게 책을 추천한 이야기, 그늘진 가족사, 시 쓰는 한 여성이 느끼고 바라보는 폭력적인 세상 이야기, 외국에서 만난 입양아 출신의 한국계 문인들 이야기 등이 무채색의 톤으로 빼곡히 들어 있다. 어쩌면 남성들은 결코 알지못할, 읽고 쓰는 것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여성의, 우물처럼 깊고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 본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