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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자까 Nov 23. 2021

끝이 날카롭지만, 일은 정확한 사람에 대하여

칼 선생님 이야기

2021년 목표 중 하나인 정확하게 일하기


나는 선단공포증이 있다. 선단공포증은 모서리가 뾰족한 물질을 보고 감정적 동요를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원인으로는 초등학생 때 일어난 사건 때문일 것이다. 가정시간에 김밥을 썰고 있었는데 식칼에 크게 베였었다. 피가 철철 나는데도 선생님한테 혼날까봐 꾹 참고 있었다. 결국에는 다친 것을 들켜서 혼났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식칼과 김밥까지도 멀리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말을 하는 사람을 멀리했다. 칼에 베이는 것 보다 두려웠다. 칼에 베인 상처는 아물기라도 했지만, 말로 생긴 상처는 쉽사리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철철 흐르는 피를 혼자서 수습하기엔 역부족이었나보다.


사립고등학교에서 교무행정지원사로 근무한지 3년 차, 어느 정도 선생님들의 성향을 파악했다. 그 중에는 칼과 같은 말을 하는 선생님이 계신다. 일명 칼선생님. 하는 말마다 모서리가 뾰족해서 가까이 가면 이곳 저곳 찔린다. 그렇다. 평생 날카로운 말을 달고 살아오신 분이었다. 안전한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었다. 그러나 피하고만 다닐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부딪혀야 했고, 소통해야만 했다.


2020년 12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때였다. 여러가지 일을 하던 중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던 일에 문제가 생겼다. 사회초년생에게는 이것저것 시키는 일을 하다보면 왜 이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채로 업무를 하기도 한다. 나에게도 바로 그런 일이었던 것 같다.


칼선생님 : (목소리를 높이며) 실수할 거를 해야지 대체 뭐한거에요?



나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당황해한다) 아, 그게 종이컵 배송이 안왔는데 다른 업무하느라 나중에 말씀 드린다는게 깜박했고…



칼선생님 : (눈을 부릅뜨고 말을 자른다) 어제는 분명 나한테 배송왔다고 했잖아요!



나 : 죄송합니다……. (확인해보겠다고 했지, 배송왔다고 말한적이 없었다)


물론, 자세한 상황설명을 하자니 유치하고, 그냥 가만히 나의 탓을 인정하는게 위협에서 가장 빠르게 탈출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상황은 벌어졌고, 말은 비수로 꽂혔다. 그리고 상처 받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칼선생님을 향한 공포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얼마나 더욱 깊게 베일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칼선생님의 날카로운 말에 베이는 와중에서도 장점을 발견했다. 바로 본인이 할일은 기가 막히게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딱 자기 할일까지 만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또 몇가지 덧붙이자면, 암기력이 굉장히 좋으시다. 아무리 긴 숫자도 정확하게 외우신다.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 (따라 해보려고 했지만 칼선생님처럼 쉽게 외워지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똑똑하신 분이셨다.)



칼선생님 : 이번에 방문하는 고등학교는 뭐냐면, (술술 외우면서) A,B,C,D,E,F,G,H …… 학교야.



나 : (입이 떡 벌어진다) 이걸 다 외우셨어요?



칼선생님 : 응. (뒤도 안 돌아본 채, 자기 할일을 하러 간다)



칼선생님은 나에게 눈길도 안주신다. 본인이 할 일만 할 뿐이고, 나는 칼선생님이 시키는 일을 그대로 입력하고 실행하는 엑셀파일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며, 기계처럼 빠르게 해야한다. 가끔씩 엑셀파일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호된 질타를 받는다. 나도 업무가 마냥 느린편은 아닌데도 칼선생님은 따라 갈 수가 없었다. 대체 칼선생님이 살아온 환경이 어떠셨기에 그랬을까?


칼은 모서리가 날카로운 대표적인 물건이다. 특히 날이 서 있어야한다. 그리하여 업무나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식칼은 끝이 뭉특하지 않게 자주 갈아주어야 재료를 손질하기 편하다. 커터칼은 녹슨 칼심을 교체해주어야지 새 것처럼 다시 쓸 수 있다. 반면에 모서리가 둥글거나 뭉특하면 심리적으로 편안하다. 예를 들어, 명찰을 제작할 때 코팅 후에 모서리 부분을 둥글게 깎아주는 것과 같이 말이다. 누군가가 모서리에 베일 위험부담을 줄여주는 단계인 것이다.


그러나 칼선생님은 그런 단계를 거치지 않으셨다. 누군가가 모서리에 베일 위험부담을 줄여주는 행동과 같은 것을 말이다. 그저 본인 스스로가 날이 서 있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날카롭지만, 정확하게 말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칼 끝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것, 내가 바라본 칼선생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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