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백

나라는 시선

by GZ

빡빡하다. 천여 명의 사람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무대를 채우고 있다. ‘천인 교향곡’이라 불리는 말러 교향곡 8번 대규모 합창단이다. 합창단이 관현악 선율에 맞춰 괴테의 가사를 읊는다. 소리의 폭포가 가슴을 친다. 베토벤의 ‘합창’과는 또 다른 장대함이 어깨를 눌러온다. 어느 가을, ‘부활’로 상처를 매만져줬던 말러가 이번에는 ‘천인 교향곡’으로 속을 두드리고 들어온다.

여덟 명의 독창자와 대규모 합창단, 오케스트라와 금관 밴드가 함께하는 ‘천인 교향곡’은 입체적이고 압도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오소서, 창조의 성령이여’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말러는 이 곡에서 성령 찬미가와 괴테의 <파우스트>를 함께 버무려놓았다. 엄청난 환희의 근원이라는 말러의 표현처럼 그 규모에 있어 ‘천인 교향곡’은 과히 압도적이다.

속이 더부룩한 게 불현듯 우레 같은 외침이 듣고 싶어 진다. 동영상을 재생시킨다. 지휘자가 손을 뻗고 바이올리니스트가 활을 밀어 올리고 첼리스트가 첼로를 감아 안고. 연주자들의 입과 손을 통해 무대 위에서 말러의 환희가 피어난다. 포개다시피 선 가수들이 내뱉은 소리가 천장으로 솟구친다. 곡은 유려하게 흐르는데 속은 영문을 알 수 없이 답답하다. 퍼져나가지 못하고 위로 치닫는 울림이 문득 평일 낮 종로 거리를 눈앞에 데려다 놓는다.


열두 시를 오 분 앞둔 시간, 종로 한가운데 섰다. 출발을 기다리는 달리기 주자가 되어 마천루 건물 곳곳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열두 시를 알리는 알람과 함께 신호가 바뀐다.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직장인들이 무리 지어 밥집을 찾아들어간다. 넥타이 부대는 인구 대이동에 버금가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낸다. 가만 서서 파도 같은 인파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정오의 종로가 전쟁터가 되어 눈에 들어온다. 부딪히고 피하기를 반복하는 사람들 사이 어디에도 틈은 없다.

여백을 잃은 풍경에 현기증이 인다. 구역질이 나려 한다. 질식할 것 같은 갑갑함을 피해 차에 오른다. 버스가 인파를 뒤로하고 달리기 시작한다. 경복궁과 자하 터널을 거쳐 근처 미술관에 이른다. 일층 면세점은 중국인들로 인산인해다. 어딜 가나 사람들로 만원이다. 관람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피로가 밀려온다.

출구로 들어선다. 미술관은 의외로 한산하다. 은은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 벽을 채운 그림이 빚어내는 고요함.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의자에 앉기도 하고 멈춰 서기도 하며 천천히 전시장을 돌아본다. 숨통이 트이는 게 살 것 같다. 한 점 한 점 반추하며 마지막 전시실을 나온 시간, 시간은 두 시를 넘어 있다.

꺼내려던 펜과 노트를 넣어두고 기념품 가게와 이벤트 방을 지나 석파정으로 들어선다. 흥선대원군의 별서였던 석파정은 한옥과 바위, 산과 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으로 도심 속 절경을 그려내고 있다. 바위산을 마주 보고 있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정자는 서울의 멋스러운 여백으로 남았다. 요란한 구두 소리와 사색을 잃은 발걸음과 초침 소리가 남긴 잔영이 느릿느릿 나를 지나간다. 밖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트임에 갑갑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석파정을 한 바퀴 돌아 나와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흰 종이가 손을 재촉한다. 전시회 감상도 남겨야 하고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것 목록도 정리해야 한다. 감상의 여운을 글로 붙들어야겠다는 욕심이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펜을 움직인다. 감상과 함께 금세 몇 달치 일정이 세워진다. 가만 계획표를 들여다본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잠을 줄이고 낭비하는 시간을 없애야 한다. 숨 쉬는 시간까지 아껴 써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다. 바위가 내려앉은 듯 가슴이 뻐근해져 온다.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든다. 반질반질한 바위에 글로 가득 찬 노트가 겹쳐진다. 빼곡한 기록과 석파정을 번갈아 쳐다본다. 잔잔한 바람과 정갈한 하늘과 가지런한 물소리가 나를 관통한다. 그제야 깨우친다. 내 삶에서 여백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중요한 뭔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조바심이라는 유령에 홀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천천히 숨을 고른다.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바람도 멎고 초침 소리도 멀어지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든 게 정지한 것 같다. 그 순간, 깎이고 깎여 둥글어진 돌에서 무언의 소리를 듣는다.


말러 교향곡의 합창이 그날의 울림을 되살려 낸다.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 나는 그 족쇄에 묶여 살았다. 잠을 줄이고 약속을 최소화하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데도 하루를 백 퍼센트 활용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늘 초조해했다. 내 삶에 채워지지 않은 시간이 있다는 걸 게으름을 위한 변명이라 생각했다.

두다멜이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8번. 여백과 공명이 아쉽다. ‘천인 교향곡’은 천 명의 사람을 채워 넣는 것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다. 저마다의 소리가 빛을 발할 수 있어야 무대는 비로소 완결해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빈 곳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어내는 울림통으로써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 시간 역시 그러하다. 일도, 책도 놓고 생각에서도 멀어진 여백의 때를 남겨둘 필요가 있다.

조밀하게 채워진 하루는 머리와 가슴을 굳히는 시멘트 일지 모른다. 빠듯한 일상은 심장을 딱딱하게 만드는 영혼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 사장되어가는 세월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 죽은 시간에 생명 불어넣기는 시간의 여백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넋 놓고 앉아 있기, 목적 없이 걸어 보기, 무작정 떠나보기, 계획 않고 지내보기. 효율의 강박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쁜 하루하루가 아닌 빈 시간이다.

천인 교향곡에 귀를 연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여기에서 완성되었다’는 가사를 곱씹는다. 째깍거리는 초침이 귀를 두드린다. 손이 간질거린다. 펜으로 뻗으려던 손가락을 깍지 끼워 턱을 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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