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시선
노랗다. 파랗고 빨갛다. 하늘을 물들이던 색이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넷이 되고. 그러다가 끝내는 하나로 버무려진다. 지는 해를 보는데 가슴이 내려앉는다. 곱다. 어린 나를 무릎에 앉혀 두고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할미의 목소리다. 어이해 그 울림이 가을을 울려대는 것인지. 소리는 번져나가는데 껍질은 없다. 내려앉는 심장의 무너짐만 발바닥을 간질일 뿐, 실체는 어디에도 없다. 귀를 파고드는 이 파문의 종착지는 고막이 아닌 청신경 저 너머 어디, 음으로는 닿을 수 없는 먼먼 어딘가 보다.
가만 서서 침묵의 균열을 쳐다본다. 사선 너머 석양 위로 터지고 밟혀 형체마저 잃은 무언가가 덧대어진다. 혀로 사탕을 굴리듯 태양을 눈으로 매만지며 누런 그것을 곱씹는다. 으깨져 검노래진 알. 동그랗고 탐스러워야 할 열매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그러진 모습이 시야를 채워온다. 은행 알갱이가 구름 속 이지러진 달이 되어 눈앞을 부유한다.
매일 아침 터진 과실로 어지러워진 도로를 지나 길을 나선다. 수확의 계절인데, 오곡이 풍성하다는 계절인데, 사방 알록달록한 색으로 무르익어도 모자란 때인데. 거뭇하게 물든 속살이 찢기고 일그러지고 으깨져 있다. 주어진 생을 채 다 채우지도 못하고 흘러내려 버린 씨앗. 그 속에 깃든 숨이 누런 얼룩이 되어 땅에 붙어 있다. 수확의 무게를 못 견뎌 바닥으로 수렴해버린 열매로 가득한 고요한 거리에서 단말마의 비명을 듣는다. 너저분함으로 남겨진 생의 마지막이 가슴을 파고드는 까닭이다.
메말라 비틀어진 죽음을 지나올 때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은 썩어 문드러진 과일을 떠올린다. 호흡하지 않는 열매에서 곪아가는 속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 걱정에 밤을 지새우는 어미들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과 쉴 곳을 잃어가는 아비들. 영글 여유는커녕 숨 돌린 시간조차 허락받지 못해 살을 양분 삼아 채운 삶 속속들이 퍼런 멍이 들어있다. 밖은 말끔한데 안은 새까맣다. 넉넉한 만큼 사윌 수밖에 없고 말끔한 만큼 지저분해져야 하는 은행알의 역설이 외려 더 평안해 보이는 이유는 살아내는 일이 그만큼 고독하고 고적하기 때문이리라.
태동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시멘트 바닥에 끝을 내려둔 종자의 종말에서 치열함을 읽는다. 약이 되기도 하는 은행의 잔해에서 우리네 병을 본다. 겉보기는 반지르르한데 안은 상해버린 이 병증은 헐어버린 속을 드러내지 못해 생긴 것일 터. 마음의 종기가 녹아내린 심장이 오늘을 대면하고 있는 이들의 등을 빼곡히 채우고 있으리라.
보도(步道)에서 사위어가는 생기를 붙들고 있던 열매의 분투를 마주한다. 노랗고 검은 사멸을 앞에 두고 살아낼 일을 곱씹고 있어야 하는 인생이 불현듯 서글퍼지는 까닭은 뭔지. 출근 시간이 목전인데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선 정수리 위로 낙엽이 흩날린다. 흩뿌려지는 잎에서 낙조를 본다. 출근길 노을이 뭉크의 ‘절규’ 같은 비명을 남긴다. 투명한 빛이 번지는 땅에 생명을 다한 검노란 열매가 놓여있다. 서툰 붓질이 남긴 추상화 같은 소란스러운 지상의 그림에서 소멸의 외침을 듣는다.
가을은 또 올 것이고 내년은 올해보다 더 풍성할 것이다. 올가을 수확이 흉이 되어 남았다고 해서 다음 해도 그럴 거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내년의 열매는 결실이 눈물이 되지 않게 뿌리내릴 터를 앞서 마련해 두고 있을 것이다. 빛을 떼어내 준 후에야 차오름을 보여주는 달처럼 말이다.
이지러짐은 채움을 만들어낸다. 기다림은 결핍을 잃은 것이 아니게 하고 소실을 완결을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게 만든다. 노을에서 전장 같은 출근길 풍경을 걷어낸다. 떨어지는 해를 향해 손을 뻗는다. 저 속에 생명이 있다. 만져지지 않을 뿐, 어둠에 먹혀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을 무엇이 저 붉음에 깃들어있다. 은행의 전언이 바알간 노을빛이 되어 번져온다. 해가 떨어진다. 땅거미가 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