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기수

by GZ

며칠 전 오래전 미국으로 건너가 연락이 끊긴 친구와 통화를 했다. 언니,라는 한 마디에 가슴이 녹아내렸다. 그 한마디를 듣는데 네가 그간 견뎌온 세월의 무게가 온전히 다 느껴졌다. 그 한순간 너의 긴 세월이 내게 온전히 와닿은 것은 떨어져 있는 동안 너라면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며 문득문득 너를 떠올린 나의 날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고 무너져 내릴 것 같을 때마다 한국을 생각하며 버틴 너의 시간이 또한 녹록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실패의 두려움에 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납득할 수 없는 세상의 방식에 타협하지 않기 위해 자존심을 세웠고 내가 내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자아서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내 뜻대로 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결의를 다졌고 남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게 얼마나 무모한지 모르면서 내가 선택했으니까 후회하더라도 그것은 내 인생이 될 것이라 믿고 무모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는 한편으로 빠른 성취를 이룬 이들에 비해 뒤처져 보이는 내 초라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감이 없어질수록 일부러 고개를 더 빳빳하게 들고는 했다.

부족하고 어설프며 위태로워 보였던 그때를 지나 그녀의 말대로 이제 물건 하나를 사려 며칠을 고민해야 하는 시절을 벗어나 있다. 계획을 세워 해외여행을 가고 때로는 일 년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고가의 사치품을 사기도 하며 앞날을 위한 저축도 한다. 그때는 커 보였던 게 지금은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다소의 불안을 끌어안고 산다.

겨우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을 뿐인데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숨이 턱까지 찼는데 우리가 그리던 그 미래는 여기에 없기 때문이다. 게을렀던 것도 아니고 세상을 얕잡아 본 것도 아닌데 어쩐지 꿈은 여전히 멀리 있다. 그리하여 꿈이 아닌 현실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은 것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긴 통화 끝에 이제 자리를 잡았다는 그녀의 말을 듣는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쓸쓸하게 느껴질까, 하고 생각한다. 집, 차, 육아, 노후. 생각해 보니 이제 꿈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그리하여 삶의 무게라 불러야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었다. 내가 성장한 만큼 꿈은 저만치 멀리 가 있고 일상의 무게는 그만큼 우리에게 더 많이 지워져 있었다.

젊었던 목표하는 것을 꿈이라 부르고 그것을 위해 달려가는 것을 노력이라 칭했다. 그렇게 우리는 꿈이라는 밧줄을 잡고 노력이라는 말을 타고 정신없이 달렸다. 선택 방향은 달랐고 그리하여 긴 시간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험로를 달려왔다. 구르고 뒹굴고 하는 노력의 시간을 길고 길었는데 현실이 된 꿈이 빛나던 순간은 너무 짧았다. 현실에 이른 꿈은 찰나의 빛을 남기고 사라졌고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일상을 끌어안은 채 꿈을 응시했다. 꿈의 희망과 허무를 동시에 느끼며 우리는 다시금 노력의 기수가 되었다. 그렇게 새 꿈을 만들고 그 꿈을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여기에 이르러 있다.

주눅 들어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시절이 있다. 낯가림 때문에 눈 맞춤하는 것조차 힘이든 데도 아닌 척 용기를 내 보는 것이 눈부셔 보일 때가 있다.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주저하고 있던 시간이 찬란해 보이는 시절이 있다. 그때는 그 모든 게 부족함으로 느껴졌는데 돌아보니 그 부족함이 나를 채워내고 있었다. 그 부족함을 채우려 했던 수많은 시도가 어쨌건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냈다. 한숨을 돌리게 되었으나 내재하는 불안은 여전하다. 어쩌면 그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숙명을 짊어지고 운명을 마주해가다 보면 불안은 줄고 여유는 늘어난 날에 이르러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숨이 차다. 그래도 숨 돌릴 여유를 가지는 방법은 익혔으니 말의 방향을 내가 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은 나의 아군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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