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모두에게 깃들어 있는 것

by GZ


공연 영상을 보다가 울컥한다.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르며 사랑을 전하는 모습이 가슴에 콕 박혔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사랑을 하였기에 저렇게 진지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싶어 숨죽여 노래를 듣게 된다. 턱을 괸 채 영상을 보며 저런 사랑을 받는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을 것 같겠다고 생각한다. 세포 하나하나의 에너지를 전부 끌어모아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이 우주에까지 닿도록 하고 말겠다는 각오에 담긴 떨림과 간절함이 너무 귀하고 아름다워 저런 사랑이라면 인생을 전부 다 걸어 보아도 후회 없겠다고 생각한다.

어디에 있건 그녀의 곁을 지킬 것임을 맹세하는 가수와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과 그러한 고백을 받았을 그녀 모두 공연장에 깃든 짙고 깊은 사랑에 잠겨 있었을 터. 관객과 가수가 하나 되어 만들어내는 울림이 사랑의 물결이 전하는 파도 소리가 되어 가슴에 귀를 끝없이 두드리고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눈에서는 행복이 물결친다. 울컥하는 마음을 붙들어 두고 작품을 통해 누군가에 감동을 전하는 일은 행복을 꽃피우는 일이 되기도 하는구나, 한다.


얼마 전 시인이 쓴 에세이집을 읽으며 산문까지 이렇게 멋들어지게 쓰면 에세이스트들은 어쩌란 말인지 하며 무릎을 꿇은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수필을 쓴 세월이 십 년이 넘었는데 역시나 나는 아직이구나, 하며 어쩐지 오징어가 된 것 같은 나의 글에 괜스레 미안함을 전하게 됐다. 펜을 제대로 쥐는 데만 십 년이 걸렸는데 그것을 손에 쥐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까지는 또 긴 길을 가야겠구나 했다. 시인의 조탁해 낸 문장이 남긴 감동이 단순히 문자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혼을 담아내고 싶은 욕심이 일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조바심이 났는데 인내심 왕이라 해도 부족할 나의 글은 지금까지도 기다렸는데 괜찮다며 천천히 하라는 말을 전해왔다. ‘그래,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하며 다시금 노트북 앞에 앉았다.

글이건 노래건 그림이건 나도 모르는 미간 구김과 무릎 꿇음이 나오게 할 정도로 눅진한 감동을 전하는 작품을 발견할 때면 혼신을 다해 하나의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새삼 곱씹게 된다. 결과를 빨리 내보이는 데 초조해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 퇴고를 거듭하고 같은 노래를 수억 번 반복해 부르고 수만 번 붓질을 반복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뜸 들이는 시간을 견뎌내 만들어 낸 감동이 나에게 신화가 되어 새겨졌기 때문이다. 그게 무용하다고 생각한 나의 무모한 기다림이 그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원의 말을 전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화는 어쩐지 영웅들의 몫인 것 같아 나 같은 소시민이 신화에 접근하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그 감동만큼은 어째 탐이 난다. 내 가슴에 또 하나의 신화를 남겨준 그들도 한때는 그러하지 않았을까? 성실히 진심을 다해 남긴 작품이 언젠가 이름도 모를 누군가에게 닿아 인생의 기반을 흔들 만큼의 파급력을 끼칠 줄 모른 채,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제자리걸음 같은 실패를 반복하며 좋아하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해 마주해오지 않았을까? 하루하루의 노력이 결실로 남겨지는 게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좋아하기에 적어도 나에게서 만큼은 그 좋아하는 마음을 기만당하고 싶지 않기에 좋아하는 만큼 최선을 다해 나아가 온 것이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감동의 파문은 마음을 울린다. 그것은 가슴에 툭 하고 떨어지는 것이라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가슴에 닿은 울림이 은은하고 잔잔하게 퍼져나가며 깊고 그윽한 파문을 일으키고 그 파문이 만들어내는 그림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되어 남겨지고. 그렇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어두운 세상을 밝혀가는 것이 감동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 온 마음을 다해 삶을 마주해 나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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