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에 불을 켜는데 개미가 보인다. 뻗었던 손을 거두어들이고 개미를 응시한다. 다른 곳도 많이 있건만 심지를 꼭 붙들고 서서 웬만해서는 떨어지지 않을 기세를 보이고 있다. 불상을 중심으로 두 자루의 초가 놓여있으니 다른 한쪽 초에 먼저 불을 붙이기로 한다. 초를 밝히고 향을 향로에 꽂은 후 다시 개미가 자리 잡고 있는 초로 향한다. 역시나 개미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늘은 개미로 불꽃을 대신하자, 하고는 한쪽 초에만 불을 붙여둔 채 불상 앞에 앉는다.
불이 켜진 초와 불이 들지 않은 초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는데 어쩐지 개미가 자리를 튼 초에서도 어째 불꽃이 아른거리는 것 같다. 라이터를 켜 든 순간 그 뜨거움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던 개미에서 느낀 부산스러움이 촛불에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제 몸을 사르며 불을 피워내는 초와 어떻게 초에 이르렀는지는 모른 채 초 위에서 길을 내어 가고 있는 개미의 움직임이 내 눈에는 어쩐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초에 불을 붙이는 것은 영혼을 밝히는 일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때 초를 켜고는 한다.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 같은 막연함 속에 촛불이라도 붙들고 있으면 그 밝음이 나를 일으켜 세워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나에게 초는 밝혀야 하는 것 빛을 내야 비로소 그 존재가치를 증명받을 수 있는 것이 되어 있었다.
빛이 없는데 빛이 나는 것을 본다. 초 위에서 발견한 개미 한 마리가 보여주는 살아있음의 움직임, 그 속에 빛이 있었다. 아득바득 기를 쓰고 아등바등 매달려도 보고 우왕좌왕 헤매도 보는 모든 것 속에 빛이 깃들어 있었음을 알려준다. 내가 빛나면 주변은 어둠이 되어 비친다. 그러하기에 내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순간 나는 정작 내 빛을 보지 못하기도 한다. 기를 쓰고 버티고 있었기에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을 뿐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모두 저마다의 빛을 내고 있었다.
무심코 죽여버린 수많은 벌레들이 눈앞을 채운다. 성가시다는 이유로 무심코 죽여버린 까만 벌레들의 잔상에서 무심함이 때로는 지독한 잔인함이 될 수 있음을 본다. 무심한 잔인함을 되돌아보며 '반성'이라는 두 자를 가슴에 새긴다. 나는 왜 내 속의 빛을 발견하지 못한 채 나를 둘러싼 환한 빛에 밀려 나를 어둠이라 생각하고 살았을까. 무심코 내뱉은 옅은 한숨으로 더 빛나지 못하는 것들의 빛을 빛이 아닌 것으로 보려 했을까. 무심함으로 그 불꽃을 꺼트리려고 한 적은 또 없었을까.
다시 개미 앞에 선다. 단 위에서 초보다 더 높은 곳은 없건만 개미는 무엇이 불안한지 초 위를 우왕좌왕하고 있다. 개미에게서 긴 길을 걸어 정상에 이르렀음에도 내가 이른 곳이 어딘지 몰라 숨 쉴 여유조차 가지지 못한 채 다시금 새길을 찾기 위해 허둥지둥하는 우리네 그림자를 마주한다. 그 그림자에 손을 덧대며 말한다. 쉬어가도 괜찮다고. 다음 정상을 또 찾아야 한다 해도 지금은 잠시 쉬어도 된다고.
빛이 없어 보이는 것에서 빛이 나게 하는 기적을 끝없이 만들어 나가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것이다. 생을 이어가는 일은 화마 같은 불길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불꽃을 천천히 조금씩 피워내는 일일 것이다.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와 불 냄새가 주변을 따뜻하게 만드는 소소한 기적을 하나씩 보여주는 여정일 것이다. 까만 개미의 움직임이 어느 불꽃보다 환하고 뜨거운 빛이 되어 까만 가슴을 밝힌다. 가슴에 손을 얹으며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이 소소한 빛이 닿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