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

우리라는 온기

by GZ

저 미로를 어떻게 빠져나올까. 육교 밑 투명한 실(絲) 집 앞에 멈춰 선다. 고개를 가까이 가져가 빈사의 백조 같은 남루한 집을 내려다본다. 불청객만 허공에 매달려 있을 뿐 집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 화가의 추상화 같은 터전을 만들어 놓은 건축주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각진 거미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죽음에 맞서 싸우고 있는 미물을 지켜본다.

조여지고 뒤틀리고 가로막히고. 움직임이 는 만큼 결박도 심해진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죽음과 결속시킨 구슬픈 서사. 비극 무대가 된 거미의 그물이 섧게 느껴지는 것은 벌레의 몸짓이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울부짖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숨이 붙어있는 한 아등바등 삶을 대면해야 하는 것이 생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검은 생명체를 감은 실이 사슬이 되어 가슴을 감아온다. 천천히 조금씩 죽어갈 것이다. 허물어져 가는 실(絲) 집을 지나온 바람이 신탁 같은 전언을 남긴다. 입김 한 번에 끊어져 버릴 가느다란 실이 각진 몸에서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검지 한 마디보다 작은 이 동물에게 거미줄은 단두대의 칼날과 다르지 않을 터. 생존을 위해 기를 쓰고 있는 저 벌레는 알고 있을까. 그가 지금 대면하고 있는 것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그가 사(死)의 대척점에 생(生)을 두고 그 가운데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는 것을.

처절한 몸부림을 보며 생각한다. 숨을 쉰다는 것은 소멸을 알면서도 살아있음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라고. 거미줄 위에 산 죽음을 관통 중인 사람들의 잔상이 겹쳐진다. 바람이 멎고 소리가 멀어지고 벌레의 형상이 지워지고. 정적과 암흑에 잠겨 나를 에워싸고 있는 고리를 읽어낸다. 동선이 되어 남겨진 처절한 몸짓을 무엇이라 해야 할지. 그 몸부림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명치를 찔러오는 이 통증이 사라질지.

돌이켜보니 죽음에 버금가는 공포와 고통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등골을 서늘하게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고 모골을 송연하게 한 시간 가운데 타인과의 관계가 놓여 있었다. 제각각인 생각이, 저마다의 시선이, 각자의 관점이 투명한 실을 잣고 엉킴을 만들어 너라는 실체와 나라는 허상을 결박하곤 했다. 해명하려 할수록 더 얽히고 벗어나려 할수록 더 옥죄어 오는 것이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대로 박제될 것이다. 저주 같은 울림이 귀를 파고드는데도 나는 죽음 쪽으로도, 삶 쪽으로도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생을 구실로 마주해야 하는 처참함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삶을 긍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때문이었다.

저 멀리 꼼지락거리는 무엇이 눈을 지나간다. 거기 놓인 게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이 머리를 두드리고 들어온다. 죽음에 대면하고 있는 생명체의 사투를 넘어다보며 대체 무슨 생각에 잠겼던 걸까. 목숨 있는 것의 움직임에 경중은 없을 터. 갈등을 대면하는 데도 얽혀버린 실타래를 푸는 법에도 상처를 받고 또 주었다는 사실에도 무감각해져 버렸으니 눈앞의 분투를 연출된 장면으로 여긴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거미줄을 걷어내고 벌레를 손에 쥔다. 잔디 위에 곤충을 내려놓는다. 갈지(之) 자를 그리고 가는 절지동물을 두고 염원한다. 또다시 거미줄을 만나면 그때는 걸려들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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