夢遊

떠돎

by GZ

나 따라가자. 목소리가 손을 잡는다. 소리만 귀를 두드리고 들어올 뿐 보이는 것은 없다. 사방 어둠이다. 침대에서 발을 내린 아이의 의식에는 아무것도 맺히지 않는다. 아이는 제가 발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야심한 시각, 대문을 열고 집을 나서고 있는 잠옷 차림 아이에게 묻는다. 어딜 가느냐고.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얀 등 위에 눈으로 주시(走屍)를 적는다. 걸어 다니는 시체. 의식이 깨어있지 않으면 걷고 있어도 죽은 것과 다르지 않다던 남명(南冥) 선생의 말이 아이의 발끝마다 챈다.

잠결에 길을 헤매고 다니던 날들이 머리를 지나간다. 가만 시간을 머금고 앉아 이십몇 년 만에 몽유하는 꼬마를 만난다. 어린 딸의 야간 외출이 부모님을 꽤 애태웠다고 들었는데 기억은 까마득하기만 하다. 뭘 하고 다니니, 어딜 돌아다니고 있니, 왜 그렇게 사니. 뇌리에 되살아난 꼬마가 질문을 던져온다. 여전히 꿈속인 듯 나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

대답 대신 책상 앞에 앉아 애먼 펜만 끄적이고 있다. 낙서로 채워진 벽과 능소화가 흐드러진 골목과 잠옷 입은 아이가 노트를 채운다. 빈 곳에 문을 그려 넣으며 생각한다. 잠든 채 걷는 그 증상이 사라진 후 현실을 꿈 삼아 살게 된 건 아니었을까, 그때부터 나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고.

원하는 일을 하며 살고자 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돈과 성공이 진리가 된 이 세계가 진짜인지 소신과 꿈이 전부인 저곳이 진짜인지. 눈을 부릅뜨고도 앞을 못 보는 사람들 일색인 여기에서 눈을 뜨고 있는 것인지 감고 있는 것인지. 존재를 고민하지 않는 이들에게 꿈은 치기 어린 망상이다. 생존이 사고(思考)를 막아서는 자들에게 소신과 의지는 폐허의 유물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승전보는 어쩌면 의지가 아닌 운명의 몫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십수 년간의 꿈의 방황. 노력이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인생에 쉼터가 없다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인 시간이라도 남겨야 했는데. 과연 내 인생이 중심에 놓였던 적이 있기는 했던가. 오롯한 나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허깨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돈 때문에 여유를 잃고 일 때문에 소중한 순간을 놓치고 욕심으로 인해 값진 만남을 헤치고. 생각해보니 산다는 건 꿈같은 고고한 명분과는 별개로 더없이 치졸한 것이었다. 한 자 한 자 종이를 채우며 주시(走屍)로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이젠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건지 나비 꿈에서 내가 된 건지도 확신할 수 없다. 꿈이라면 깨고 싶은데 너무 길게 한 길만 걸어온 탓인지 이 몽유(夢遊)를 멈출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종소리가 귀를 울린다. 남명 선생이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성성자와 경의검. 그 잔상이 눈에 아른거린다. 오답을 알리는 종인지, 정답을 일러주는 종인지 모르는 소리를 들으며 몽유병을 앓고 있던 아이를 돌아본다. 아이가 나를 응시하며 말한다. 나를 만나러 가고 있다고. 그 말을 듣는데 왜 눈물이 도는 건지. 번진 눈물이 왜 별 같은 나비를 만들어내는 건지. 내 손은 왜 또 꼼지락거리는 건지. 아무리 곱씹어도 모르겠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여기가 꿈속인지 현실인지.

종이 위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나풀거리며 날갯짓을 한다. 손가락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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