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
눈꺼풀이 밀려 올라간다. 날은 아직 밝지 않았다. 째깍째깍. 시계는 잠들기 전과 다름없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어둠에 둘러싸인 침대와 닫힌 문과 창가의 커튼. 모든 게 그대로인데 심장 박동은 궤도를 벗어나 있다. 이 불규칙한 울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우는 아기 달래듯 가슴을 문지른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기를 반복하며 호흡을 이어간다. 익사하는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심장이 뜯겨나가는 듯한 통증이 정수리를 치고 간다. 이 불안과 고통이 아침까지는 이어지지 않길 기도하며 거북이처럼 등을 만다.
금 간 마음에 뿌리내린 이 아픔은 오롯한 내 몫으로 주어진 모양이다. 책장도, 저 너머 책상도, 그 뒤의 창도 온몸을 저리게 하는 급통(急痛)의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한다. 팔다리로 가슴을 감싸 쥐고 몸을 움츠린다. 둥글게 만 몸을 동아줄 삼아 끊어질 듯한 신경을 붙든다. 나를 향한 질타의 손가락질과 출처 모를 욕설과 날 선 시선의 그림자가 등 위에 겹친다. 주먹을 움켜쥐며 탄식하듯 말한다. 내게 남은 유일한 안식처인 이 굴만은 제발 침범하지 말아 달라고.
바닥에 귀를 대고 눕는다. 불안이 멎어 들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불러내 본다. 쇠사슬에 수족이 묶인 사람들과 결박된 고개와 그림자와 동굴. 주문처럼 플라톤의 비유다. 평생 동굴에 갇혀 산 이들에게 벽 위의 그림자는 세상 모든 것이었을 터. 현자(賢者)는 그곳을 나와 빛의 세계를 접했다. 그로 인해 동굴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진정한 현인이라면 다시 돌아가 사람들이 족쇄를 풀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던가. 플라톤의 우화를 되새기며 자문한다. 쇠사슬을 풀 것인가, 아니면 결박될 것인가.
생(生)이 나아감도 물러섬도 없던 때 나는 나를 부정해야 생존할 수 있는 굴에 갇혀 살았다. 누구도 내가 그리는 곳의 실재를 믿지 않았다, 나의 분투를 헛된 노력이라 치부하며 목소리를 소거해 버렸다. 서늘한 불신이 가슴을 저격했다. 나는 그곳에서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내 눈에 맺히는데 내 것이 아니고 내 입을 통해 나오는데 내 말이 될 수 없는 그 공간은 유령의 집이었다.
빛은 없었고 꿈은 허상일 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기계처럼 세사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나를 지워버리면 희미한 그 동굴이 안온한 집이 되어줄 줄 알았는데, 그림자가 더 선명해질 줄 알았는데, 사슬이 몸에 익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동굴의 어둠에 길든 나는 나에게서 손님이 되어 갔다. 남의 말에 휘둘리는 사이 나를 잃어갔다. 그리고 끝내는 불안이라는 동굴에 갇히고 말았다. 손가락 하나 멋대로 움직일 수 없고 목소리는 울리지 않으며 눈은 멀게 된 암막 같은 지옥에 말이다.
살면 살수록 삶이 더 퍽퍽하게 느껴지는 것은 꿈이라는 지붕을 실리라는 철조망과 바꿔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공황장애라는 이 병은 경계 너머의 세상을 보고 온 내가 나에게 부쳐온 편지일지도 모른다. 불규칙한 이 심장 박동은 나를 향한 회초리질 일지도 모른다.
동물원 우리를 부수고 나와 사자를 물어 죽였다는 곰의 사연을 듣는다. 인간도 동물도 마음의 집을 잃으면 난폭해지는 법이다. 무엇을 바라 다시 동굴로 돌아와 나를 꽁꽁 싸매고 있었던 걸까. 내가 본 것은 정녕 허상에 불과했던 것일까. 꿈길에 들어서면서 가슴을 동여맨 끈이 없는 투명한 동굴을 꿈꾸었을 텐데. 숨어들기 위한 고립의 공간이 아니라 다리가 놓인 소통의 터전으로서의 동굴을 그렸을 텐데. 두근거림은 진정되지 않고 통증은 더해 간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기도(氣道)가 막혀버린 듯 숨이 가빠온다. 가슴의 옥죔은 오늘도 아침까지 이어지려는 모양이다. 족쇄를 끊어낼 것인가, 아니면 그림자에 매몰될 것인가. 터오는 먼동이 유달리 눈부시게 느껴지는 게 착각이 아니기를, 어둠의 굴에 환한 빛이 들기를, 그리하여 쇠사슬을 벗을 수 있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