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먹고 자란 아이

관조

by GZ

단추 같은 당신 젖꼭지 옆에 작은달이 있다. 젖꽃판에는 우주가 숨었다. 까만 점이 지구와 달만큼의 거리를 두고 마른 유두를 올려다보고 있다. 젖이 터져야 달도 차오를 텐데. 갓난아이의 배를 채운 가슴은 더는 달무리 같은 모유를 내놓지 못한다. 탄력 없는 살덩이에는 세월의 흔적만 남았을 뿐, 진액 같은 젖도 생에 대한 환희도 청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피를 잔뜩 뱉고서야 모유를 내놓았다는 예순 넘은 어미의 가슴을 앞에 두고 있다. 자식 둘을 먹인 젖통이 늦가을 이삭처럼 늘어졌다. 처녀의 풍만한 젖무덤도 대지 같은 산모의 유방도 아닌, 중력에 충실할 줄 아는 젖꼭지를 따라 내 우주의 시작에 이른다. 생명이 소용돌이치는 지점, 자궁에 머리를 들이민 채 생사의 경계를 관통해온 생을 향한 집착을 본다. 태어난 후 일주일 내내 울기만 해 어미 속을 까맣게 태웠다는 고약하고 못된 고집을 읽는다.

당신 가슴 위 까만 점을 응시한다. 입덧 때문에 황천길 먼저 보낼 뻔했다고, 빛을 보이지도 않아 어둠에 매장해버릴 뻔했다고 하는 말끝에 씁쓸함이 감돈다. 눈도 뜨지 못했던 그때 삶의 끈을 놔버렸더라면 사는 데 힘이 부쳐 목 놓아 우는 오늘을 맞을 일도 없을 텐데. 서른 넘도록 부모 품을 벗어나지 못해 당신을 속 썩이는 일도 없을 텐데. 무엇을 위해 이곳에 닿으려 그토록 기를 쓴 것인지. 열 달 내도록 어미를 굶기며 황량한 이 대지를 밟고자 한 이유는 대체 뭔지. 미욱한 나는 오늘도 마음 같이 풀리지 않은 삶을 붙들고 씨름 중이다.

내게 자궁이라는 큰 집을 덥석 내준 어미는 그것만으로 모자라다는 듯 모유로 우주의 씨를 심어주었다. 다리 사이에 빛이 든 그 순간 유선이 하늘로의 통로가 되어 이어졌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챘기 때문이리라. 생으로의 길은 벌써 났건만 아직 이러고 헤매고 있는 걸 보니 당신이 안겨 준 그 광활한 세계는 여전히 까마득하고 먼가 보다.

달은 지구를 중심으로 하루를 살아낸다. 지구는 태양을 축으로 공전한다. 자식은 부모를 구심점 삼아 항성을 만들고 부모는 자식을 보며 우주가 되는 법을 익힌다. 아비와 어미에게는 자식이 세상의 기점이고 온전한 세계가 되지 못한 어린 생명에게는 부모가 우주다. 아버지가 우주의 형체를 보여준다면 어머니는 깊이를 더해준다. 자궁을 내주고 세사로의 길을 터 준 어머니에게 달이 있고 씨를 준 아버지에게 지구가 있는 것이다.

태고의 세상을 전하는 소명을 다한 당신 젖가슴이 반시처럼 줄어있다. 늘어진 살 때문일까. 까만 점이 유독 더 도드라져 보인다. 지구와 달이 된 젖꽃판 위의 젖꼭지와 점, 그리고 그 모든 걸 품고 있는 가슴. 환갑이 지난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인고의 세월을 마주한다.

보잘것없는 자식을 위해 몸을 내준 어머니와 좁디좁은 자궁을 빠져나온 자식. 우리는 그날 빛을 보기 위해 한 몸이 되어 사투했다. 그리고는 근 하루를 버텨낸 후에야 생의 첫 밝음을 보았다. 거기부터는 나와의 싸움이었다. 목청이 터질 듯 운 것도 마른 젖가슴에 매달렸던 것도 젖꼭지가 물러지도록 젖을 빨았던 것도 전부 생의 문턱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었을 터. 미생인 내 분투는 삶을 마주하리라는 외침이었다. 언젠가 나 또한 태초의 우주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은 그 모든 걸 견디게 한 것이리라.

삶의 질곡이 목숨을 해할 수는 없다. 천체의 기운이 모인 결정체가 지금 이 순간의 나이다. 말라비틀어진 가슴이 젖을 내준 그 순간 알았다. 앞으로 내가 우주를 먹고 자랄 것이라는 사실을. 어떠한 고통에 직면해도 오늘을 마주하는 한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허니 공전과 자전, 어둠과 빛으로 구축된 나라는 우주를 귀하게 여겨야겠다. 살아있음은 그 자체로 값진 것임을 마음에 새겨야겠다. 죽음이 삶을 유혹해올 때면 당신 가슴 위 검은 달을 구심점 삼아 꿋꿋하게 길을 열어가야겠다.


The Human Fetus In The Womb_Leonardo da Vinci.jpg The Human Fetus In The Womb_Leonardo da Vin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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