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부채질

거리

by GZ

가슴에 불이 난 것 같다. 손부채질이라도 하면 화기가 가실까. 팔을 움직인다. 손은 헛돌고 속은 끓어오르고. 엄동설한에 얼음을 씹는다. 덥다. 바람은 찬데 속은 뜨겁다. 땀이 날 듯한 뜨거운 더위가 등을 지나간다. 혀를 내밀고 구토하듯 숨을 뱉는다. 허연 김이 유령이 되어 허공에 나부낀다. 볼과 귀, 코를 지나온 바람이 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찬 공기가 끓어오른 심장을 파고든다. 칼바람에 마음을 벤 듯 가슴이 저리도록 시리다.

그새 눈 밑은 뜨끈하게 달아올라 있다. 볼도 귀도 손도 얼음처럼 찬데 눈동자는 견딜 수 없이 뜨겁다. 눈이 탈 것 같아서, 심장이 얼어버릴 것만 같아서 눈물을 내려둔다. 눈물의 매질이 날 선 바람만큼 매섭다. 부채질하던 손으로 볼을 문지른다. 아린 볼을 곱씹으며 상처랍시며 끌어안고 있던 것들을 외면하기로 한다. 열정이랍시고 손에 쥐고 있던 것도 놓기로 한다. 눈물 한 바가지 쏟고 등 돌려 버리면 화마 같은 이 열기도 가실지 모를 일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릴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눈물샘을 비워내니 헐벗은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쓸쓸하고 고적해 보이는 회갈색 앙상한 뼈를 한 땀 한 땀 시야에 담는다. 초침 소리를 들으며 시간에 묻는다. 대체 내 인생에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왜 나를 여기로 데려다 놓았냐고, 아프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극심한 이 고통은 뭐냐고.

바람에 꺾이는 가지에 서늘한 열정을 덧씌운다. 휘익, 휘익, 바람 소리가 요란하다. 째깍거리는 초침의 울림이 시간의 흔적은 아닐 터. 흰 눈이 남긴 차고 하얀 불을 쬐며 새까만 회초리를 맞는다. 손부채질을 하며 굉음이 되어 남겨진 바람 껍질에 불을 붙인다. 또르륵. 언 손에 눈물이 떨어진다. 시간이 무상하게 나를 지나간다.

Paul_Cézanne_The Black Marble Clock_1869_1871.jpg Paul_Cézanne_The Black Marble Clock_1869_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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