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
벽을 보고 이야기를 뱉는다. 마음을 터놓으려. 내 속은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데 응답은 들리지 않는다. 맞은편 어딘가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내 소리의 잔해뿐, 귀에 담기는 다른 울림은 이다. 똬리를 틀고 침묵 속으로 들어간다. 굳기 직전의 조각상이 된 듯 흘러내리듯 앉아 생각한다. 이 소거됨을 감각하기 위해 벽, 너라는 대상을 대화 상대로 택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부러 너를 마주하고서 외롭다 하는 것은, 고독하다 부르짖는 것은 이율배반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오늘 저녁 이 좁다란방의 힌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것만이 오고간다.
‘흰 바람벽이 있어’의 첫 구절이다.
문장 하나를 뱉어두고 호흡을 고른다. 입으로 코로 밀어낸 숨이 바람이 되어 일렁인다. 잔잔한 공기의 일렁임이 흰색을 좋아해 이름까지 백석(白石)이라 했다는 시인의 글귀를 불러낸다. ‘이 힌 바람벽에 히미한 十五燭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함주나 한잔 먹고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고독을 펄럭이며 안부를 물어오는 시인. 시의 훈기를 머금는다. 나라는 조각상을 말리며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쓸쓸한 얼골이 있다는 허연 벽을 곱씹는다. 그러다 불현듯 그 위에서 거울을 본다.
시인은 벽이 하얗다던데 내 벽은 온통 거울 투성이다. 이리 보면 울고 있는 내가 있고 저리 보면 소리치는 내가 보이고 올려다보면 웃고 있는 나를 만난다. 벽이라는 거울에서 갖가지 표정을 읽는 것이 하얀 벽을 남기고 간 시인 같은 이들을 가슴에 품고 살았기 때문인지, 펜을 쥐고 사는 삶을 부여잡고 있기 때문인지. 자문(自問) 앞에 입을 닫고 있을 수밖에 없음은 내 글이 소리를 잃어서 인지도 모를 일이다.
벽을 볼 때마다, 아니 나를 마주할 때마다 하얗디 하얀 입술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투명하다는 단어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바람. 잔잔한 파문 앞에서 수도승이라도 된 듯 마음의 묵은 때를 털어내고 욕심을 덜어내고 나를 지워낸다. 그리고는 깨우친다. 눈앞의 그것이 내가 만든 허상이었다는 것을. 벽은 밖에 있었던 게 아니라 내 속에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을.
이 파장이 별이 된 그에게도 닿은 것일까. 시인이 마지막 말을 건네 온다. '하눌이 이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쨈」과 陶淵明과 「하이너∙마리아∙릴케」가 그러하듯이'라며.
파지직. 벽돌 하나가 떨어져 내린다. 거울에 금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