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글

손 글

by GZ

등을 치는 손이 맵다. 이 맛을 살려낼 수 있을까.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는다. 문장이 손을 가져다 쓰기 시작한다. 생각이 하얀 대지 위를 노닌다. 여기서부터 글자가 손을 움직이는 마법에 속도가 더해진다. 이제 나는 주체가 아닌 객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발상을 끌어내는 것도 손끝을 움직이는 이도 나였으니 글을 쓴다는 표현이 맞았다. 돌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끊임없는 절규가 자연을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다던 뭉크처럼 노을이 더없이 붉던 오후 불현듯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날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손이 멋대로 움직여지더니 글이 남겨지고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려왔다. 습관이라고 할 수도 없고 손이 잘 풀리는 것과도 다른, 글이 손에 실리는 듯한 감각이 나를 관통했다. 그 짧은 순간, 직감했다. 눈앞에 나타난 세상이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무엇이라는 것을.

금세 수필 한 편이 완성되었다. 수십 번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후에나 만날 수 있는 말끔한 글이었다. 어떻게 써 내려갔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그 내용을 꺼내 썼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가슴을 휘몰아치는 뭔가가 나를 책상에 앉히고 손을 움직여 순식간에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이었다.

용암 분출 같은 터짐을 느꼈다. 두렵고 또 후련했다. 생소한 몰아닥침.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끌고 가는 데서 오는 먹먹함.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흐름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환란과도 같았던 그 순간 나를 붙들어준 한 마디가 있었다. ‘제대로 사는 것이 제대로 쓰는 것이다.’ 마음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가, 진정성 있게 쓰고 있는가, 자문했다. 삶과 글 사이의 이음새가 드러나지 않는 천의무봉 같은 작품을 남기고 싶었는데. 내 글이 어디쯤 이르렀는지 되돌아보았다.

쓰는 행위에서 작위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복잡한 얼개와 탄탄한 구조, 화려한 표현에 대한 의식을 지워갔다. 누군가를 염두에 둔 글이 아닌, 하고자 하는 말을 뱉으려 노력했다. 글에 나를 내놓고 몸에 글을 입혔다. 그러면서 천의무봉의 경지는 평온한 상태가 아닌 미지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 나를 선회한 그 손이 철학자 메를로퐁티가 말한 ‘몸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시간과 의식이 켜켜이 포개져 만들어진, 살(肉)을 넘어선 몸을 경험한 것이었다. 길들여지지 않은 몸과 고집스러운 의식과 뿌리 깊은 무의식이 만들어낸 흐름. 몸을 개(犬)라고 했다던 연주가의 말을 떠올린다. 손을 움직여 속살 같은 속내를 뱉어내게 만드는 것은 의식도 무의식도 아닌, 세월을 머금은 몸 그 자체다. 수필은 그러한 몸틀이 뱉어내는 몸에 가장 근접해 있는 글이다. 제대로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손이 매운 글이 수필이다.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뜻의 논어 마지막 글귀다. 선물로 받은 그 한마디가 소화되지 않아 붓을 든 지 몇 달. 손은 떨려오고 글은 어긋나고. 붓이 나를 비웃듯, 물이 나를 울리듯 글자는 온통 삐뚤빼뚤하다. 물기를 머금은 붓으로 쓰는 글의 수고로움을 매일같이 실감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 붓글을 쓰기 시작한 후 알게 되었다. 붓으로 적어나가는 글에는 기운이 깃들기 마련이라는 것을. 수필이 ‘붓을 따른 글’을 뜻한다는 것을.

한 자 한 자에 기를 불어넣어 쓴 것이 수필이다. 세월을 품은 손이 뱉어내는 글을 손 글이라 칭하려 한다. 삶에 대한 반추가 고스란히 스며있는 글을 손을 따른 글, 수필(手筆)이라 정의하려 한다. 때로는 자상한 손길로, 때로는 매운 손바닥으로 진정성 있게 인생을 담아내는 글을 남기리라. 회초리 같은 붓을 쥐고 자문한다.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성실히 써나가고 있는가. 그리고 두 마디를 더한다. 제대로 사는 게 제대로 쓰는 것이다. 제대로 쓰는 게 제대로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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