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는 무심
칼날을 간다. 예리해지라고. 날이 서야 칼은 쓸모를 다할 수 있다. 혀를 움직인다. 모나지 말라고. 혀는 모름지기 부드럽고 뭉근해야 한다. 날카로워지면 가슴을 찌르는 단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둥근 혀에 바늘이 생겼다. 이물감이 성가시다. 음식을 씹을 때마다 걸리적거린다. 혓바늘을 이에 문지른다. 튀어나온 살점이 사라지길 바라며. 침을 넘긴다. 목이 당긴다. 얼음도 먹어보고 꿀을 머금어도 보고 연고를 발라봐도 소용이 없다. 칼끝은 뾰족해야 쓰임을 다할 수 있고 혀는 무게감 있되 날카롭지 않아야 하는 것을. 혀가 자꾸 각져 간다.
혀를 입천장에 갖다 댄다. 아픔이 지나간다. 정수리가 쭈뼛하다. 그런데도 얼마나 작아졌나 하고 습관처럼 자꾸만 혓바늘을 확인한다. 터를 잡기라도 한 듯 통증이 혀뿌리에서 목을 지나 손가락까지 번져온다. 침이 고이고 움직임이 둔해지더니 이제는 발음까지 어눌하다. 서슬 돋은 설단(舌端)은 혀조차 되지 못하나 보다.
시간을 반추한다. 이 퍼런 혀로 무용한 말을 얼마나 많이 쏟아냈던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마음을 담을 그릇으로서의 말이 아닌 방패와 칼로써의 발화가 늘었다. 상황을 관조하는 주체가 아니라 휩쓸리는 대상으로의 미욱함에 휩쓸렸기 때문이었다. 의도와 다른 말을 뱉고, 찬성할 수 없는 이야기에 동의를 표하고, 부당함에 맞서서는 목소리를 줄이고. 두려움과 의심에서 비롯된 대화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저 타인을 중심에 둔 대상으로서 낯선 곳에 놓여있을 뿐이었다.
나를 부정하는 것으로 나를 긍정해야 하는 아이러니. 속은 타들어 가고 혀가 틀리는 듯한 고통은 마음을 말렸다. 말하기에 여념 없는 입술에 이성을 마비시키는 힘이 깃들어 있기라도 한 걸까. 발화하는 짐승이 되어 움직이는 혀를 눈과 귀에 담는 동안 나는 내가 선 질퍽한 땅을 보지 못했다. 정작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못했다. 재가 되어 사라질지 모를 무용한 말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울린 대화를 얼마나 만났던가. 손익분기점을 위한 정보 교환이 정녕 필요하긴 했던 것인가.
부지불식간에 누군가의 도마 위에 오른 나와 그런 나를 똑 닮은 이들을 본다. 도마 위에서 퍼덕이는 저것은 생선인가 혀인가, 그도 아니면 욕망인가. 알 수가 없다. 왜 유령 같은 그것에 누군가의 삶을 투영해놓고는 제멋대로 재단해버리는 건지. 내가 아닌데 내가 되고, 내 입에서 나오지 않은 말이 내 것이 되고, 나는 어느새 나조차 모를 낯선 이가 된다. 사실이 제각각 달리 새겨지는 것인지 기억이 왜곡되는 것인지. 진위를 알 수 없는 말이 활개를 친다. 귀에 두고 싶지 않은 자극적인 소리가 고막을 두드리고 들어온다. 눈은 감아버리면 그만이건만 귀는 틀어막아도 소리를 소거할 수 없다. 혀가 빚어내는 이 고통은 사고하는 인간으로서 짊어져야 할 짐일지도.
지금도 당신과 나는 소일거리 삼아 타인의 삶을 입에 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내려치는 단두대 같은 그 도마 위에 오늘은 또 누가 올라있을까. 나는 과연 거기에 한 사람도 올리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내 혀 놀림에는 한 점의 오류도, 거짓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낯 모를 이들의 말에 가슴을 베고서야 실감한다. 흥이 오른 혀의 무서움을.
감각에 무뎌진 혀는 무기이다. 칼 장난에 길들면 누군가의 속을 난도질하고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달아오른 입은 그것을 휘둘러 상대의 목을 벨지, 아니면 상처 입은 누군가를 품어줄지 하는 고민에서조차 멀어져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머금는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하라고 했던가. 감정을 곱씹어 보지도, 나를 되돌아보지 않은 채 속을 뱉어내야만 마음이 후련해진다고 믿는 어리석음에 휘둘리지 않으련다. 뜬소문에 속아 나를 곡해한 이들과 누군가를 오해했던 싸늘한 내 눈을 지워야지. 어느 시인의 말처럼 부끄럼 없을 혀를 만들어가야지. 벼랑 끝에 선 나를 잡아 준 것은 깎아지른 말이 아닌, 둥글고 따뜻한 혀였기에. 너른 대지 같은 혀의 평온함을 모르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