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읽다

너라는 존재

by GZ

모니터와 휴대전화에 둘러싸여 사장되어 가는 널 붙들고 있는 건 시간 낭비다. 수만 번 곱씹어 뱉어낸 결론은 늘 이 한 줄로 귀결된다. 이건 자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손에 쥔다 해서 쓸 수 있다는 장담도 할 수 없는데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무모한 낙하(落下)를 번번이 반복하고 만다. 네 무게를 감당하는 것, 그게 내 삶의 무게중심을 찾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그랬던가. 독서에 너무 심취하면 조심한다고 해도 오류에 빠지기 쉽다고. 하얀 눈으로 너를 더듬는다. 글을 읽어내는 게 이토록 힘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만만찮은 녀석이다. 너로 인해 시간을 붙들고 씨름 중이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아리송하다. 행간을 파악하고 의미를 새기는 데는 두려울 게 없다 자신했는데 난공불락이다. 연이어 되새김질을 해도 책장은 도돌이표처럼 다시 앞으로 넘어간다. 시침은 한참을 돌아갔건만 잡히는 건 없다. 오랜 시간 널 붙들고 앉아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책 한 권을 쥐고 며칠을 전전긍긍이다. 글이 그림과 달라 보이지 않는 사태. 다른 책장은 펼쳐볼 생각도 못한 채 오직 너에게만 빠져있었는데도 읽을수록 더 어렵다. 다독(多讀)이 권수만 이르는 것은 아닐 터. 허나 이 시간이면 몇 권은 더 읽었겠다 싶으니 본전 생각이 난다. 난서 아닌 악서인 걸까, 나쁜 책에 물들어가는 건 아닐까, 책을 대하기엔 세사를 보는 눈이 너무 좁은 걸까. 가슴을 짓눌러 오는 정체모를 갖은 의문들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 이리라. 더는 무리다. 이토록 나를 괴롭히는 게, 그간의 내 사고를 전복시키려는 게 양서 일리 없다. 책장을 덮는다.

저만치 책을 치워두고 찬 커피로 속을 식힌다. 어깨가 무겁다. 눈이 시린다 싶더니 금세 피곤이 밀려온다. 책상에서 등을 돌려 글을 달여 낸 듯한 검은 눈물을 한 모금 터 삼킨다. 와자작 얼음 부서지는 소리를 머금는다. 냉기와 열기 사이에서 저 너머의 서책을 닮은 너를 생각한다. 어제는 지켜야 할 사람이었다가 오늘은 노련한 거짓말쟁이가 되고 내일은 상종하지 말아야 할 존재였다가 모레면 순진무구해질 너를 말이다.

너를 알고 지낸 시간 동안 나는 환멸과 신의(信義) 사이를 부단히도 자주 오갔다. 변신에 탁월한 너는 모면의 귀재였고 거짓의 노련한 조련사였다. 일관성을 읽을 수 없는, 많이 배운 너를 나는 난서(亂書)라 생각했다. 지나친 몸 사림은 신중함이라 여겼고 두서없는 둘러댐은 배려로 해석했다. 도를 넘어선 무례함과 이기심.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녹아내리고 말았고 끝내 신뢰는 무너졌다. 이토록 난해한 너라는 책이 왜 내게 쥐어졌는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닿음이 고통이 되어 나를 덮쳤다.

근묵자흑이라 했던가. 나쁜 책은 가까이 두는 게 아니다. 어쩌면 너는 안 읽는 것만 못한 악서일지도 모른다. 둘러대고 모면하기 일색인 언행의 잔상이 불쾌한 그림자가 되어 나를 붙든다. 생각이 많아진 만큼 너는 거짓에 가까워진다. 불신이 뿌리 잡기 시작하더니 너를 호인이라 본 내 안목에 대한 질타가 이어진다. 그 믿음이 허깨비는 아니었을 텐데 대체 뭘 근거로 나는 너를 표리 부동하고 교활하다 단정하는 걸까. 내 좁은 소견이 진실을 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너는 내게 악서인지 난서인지. 아무리 곱씹어 봐도 결론은 나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자신은 돌아보지 않은 채 멋대로 타인만 매도해 버리는 건 교만에 지나지 않는다. 각 개인은 각각의 역사를 지닌 한 권의 책인 까닭이다. 해독의 단서를 읽어내는 것만큼 한 사람을 알아가는 일도 쉬울 리는 없다. 읽기 버겁다 해서 악서라 단정하고 싶지도 내 안목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너라는 책을 소화시키기가 녹록지 않았던 것뿐이다. 누군가에겐 나 역시 악서 같은 난서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난해하기 그지없는 네가 나를 비추어 볼 수 있는 탁월한 거울일 수도 있다.

양서니 악서니 했던 건방 앞에 무릎을 꿇는다. 내 삶을 엮는 게 녹록지 않았던 것처럼 네 시간도 수월하게 남겨진 건 아닐 터. 곱씹어 생각해보니 내 깜냥으로 너를 재단하기에 바빴다. 책장은 들춰보지도 않은 채 소개말만 보고 던져둔 책도 적지 않다. 책 한 권 남기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삶이 녹록했던 때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저마다 사력을 다해 마주한 생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읽어내는 일이 수월할 리 없다.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심사숙고와 절차탁마가 필요하다. 그러니 책을 집어 드는 게, 있는 그대로 보는 게 먼저다. 도중하차는 교만과 섣부름의 또 다른 이름이다. 허니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글과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스쳐온 인연 속에 예상치 못한 전개를 만나고 뜻하지 않은 깨우침을 얻지 않았던가. 그때는 알아듣지 못했던 글귀가 오늘의 나를 살리는 한 줄이 되어주기도 하지 않았던가. 어떤 책이건 나라는 책을 써나가는 데 일조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여, 어리석음이라는 무딘 칼로 너라는 책을 섣불리 평가 내리는 우를 범할 수는 없다.

나는 오늘도 너와 함께 내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너에게 악서이기보다는 난서로, 난서 이기보다는 양서로 남고 싶다. 부단히 퇴고하리라. 몇 장 넘기지 않아 네게서 등을 돌려 버리는 섣부름을 경계하리라. 너를 잘 읽어내는 것, 그것이 곧 나를 알아가는 길이기에 오늘도 읽기를 멈추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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