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발 노인, 눈을 뜨다

너라는 존재

by GZ

골목 어귀 의자에 지팡이 짚은 노파가 있다. 여섯 시를 앞둔 시각, 노인의 눈은 동이 터오는 곳에 멎어 있다. 일찍이 고개를 내민 태양은 지붕에 가렸다. 땅은 아침의 신산함을 뱉어내고 주름진 손가락 위의 담배는 그림 같은 연기를 피워 낸다.

쭈글쭈글한 얼굴,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내려 감은 눈, 지팡이를 쥔 손, 굽은 등, 마른 다리. 노인의 모습에 발이 붙들린다. 화석처럼 굳어 앉은 노랑(老嫏)을 응시한다. 고양이만 무심히 오갈 뿐 머리에 하얀 세월을 인 할미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하늘을 맴돌던 새가 땅을 내려다본다. 아침이 느릿느릿 백발 노모를 쓸어온다. 째깍. 세 발 노고(老姑)와 골목과 해가 낡은 시가 되어 가슴에 새겨진다.

동으로 고개를 든 여인과 해독할 수 없는 움직임을 그려내는 연기와 새벽 공기. 인적 드문 길가에서 태양을 응시하는 노인의 모습이 빛바랜 사진이 되어 눈에 담긴다. 턱을 당겨 앉은 노온(老媼)이 넘어다볼 수 없는 벽이 되어 눈을 채운다. 깡마른 온구(媼嫗)의 굳게 닫힌 입이 세월이라는 무언의 울림을 전해 온다.

손을 모으고 서서 침묵을 응시한다. 저만큼의 시간을 거쳐 나오면 살아감에 초연해질 수 있을까.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고 앉은 새 하루에 감사할 여유를 가지게 될까. 갑갑하고 초라한 현실을 견디다 못해 발작하듯 떠나곤 하는 고약한 습관을 버릴 수 있을까. 인생이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않을 때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현실 너머로 돌리곤 했다. 어딘지 모를 그곳을 넘어다보며 어린 날의 꿈을 상기했다. 그러고 있자면 조소의 시선이 느껴졌다. 부유하는 인생을 꿈꾼 건 아니었는데. 초라한 오늘을 그리지는 않았는데. 이토록 나약한 나는 내가 아닌데. 나를 응시하는 눈을 마주하며 그간 거부하고 부정해 온 것들이 차마 내가 아니라는 말을 뱉지 못했다.

자살로 생을 끝낸 자들의 삶을 곱씹을 때가 있다. 살아있음의 끝은 자연의 몫이다. 삶을 읽어낼 수 없을 때마다 죽음을 넘어다봤던 내 결론은 그랬다. 자가 종결에 동의하지 않는 내 마지막은 기다림에 닿아있었다. 살아감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선사할지라도 삶이 있는 한 견디는 게 나에게는 정답이었다. 그랬기에 내 존재를 지우고 싶어 지는 순간을 만날 때마다 여행 짐을 쌌다. 그게 질식 직전의 내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벗어나려 할수록 더 결박해오는 생의 서사를 이탈하려 공항으로 향하던 길, 이름 모를 노부(老婦)를 만난다. 마고할미가 생의 상징이 되어 눈앞에 놓여 있다. 눈꺼풀을 내려 감은 노구(老軀)가 말한다. 알고 보면 살아가는 게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길어지는 그림자를 지켜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가 지붕 위로 고개를 내민다. 깊은 나이테가 팬 노파의 얼굴 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웅덩이같이 고여 있던 그림자가 작대기가 되어 늘어진다. 백발 아래 자리 잡은 허연 눈썹이 움찔거린다. 노인이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어둠의 굴 같던 눈에 빛이 들어온다. 식은 땅에서 아침이 떠오른다. 여섯 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의식의 눈을 뜨는 것으로 그리고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으로 삶은 다시 시작되리라.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은 아침 해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마주하고 있다는 것의 방증 이리라. 노인에게서 등을 돌린다. 삶을 대면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순간이 찬란하기를 그리하여 살아있음 그 자체로 고귀한 빛을 발하기를 기도하며.

20180926_175943.jpg


이전 04화너를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