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디오니소스

by GZ

요령(鐃鈴)이 운다. 요령잡이가 입을 뗀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돌아올 수 없는 이를 위한 진혼곡이 허공을 울린다. 어야디야. 선소리에 이어 후창이 따른다. 북망산천 머다더니 내 집 앞이 북망일세. 꽃가마는 앞을 향해가고 노래는 더 구슬퍼져 있다. 어 넘자 너화 너. 어너어너, 어이가리 넘자 너화넘.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을 일러주오. 단장을 마친 꽃 상여와 죽음을 배웅하던 긴 줄은 장례행렬이었다. 어린 마음에 신기하게 쳐다보기만 했을 뿐, 그때는 알지 못했다. 후일을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이 인간에게는 숙명으로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그날 내가 들은 노래가 숨을 멈춘 누군가를 위한 것이었음을, 화려하게 치장한 그 상자에 죽은 이가 몸을 누이고 있었음을, 그 곡이 상여를 끌며 부르는 노래인 만가(輓歌)였음을 알게 된 나이. 이윽고 죽음을 마주한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영원한 이별이 모난 별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별은 찬란하게 빛나건만 아리는 가슴은 그만큼 저려온다.

곡을 하고 절을 하고 손님을 맞고. 삼 일이 꿈 같이 지나갔다. 분주히 이별을 준비한 날들이 딱딱하게 굳어 박제되어 남아있다. 말로 풀어낼 수 없는 어떠한 시간을 건너온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내 것 같지가 않다. 손을 붙들고 함께 걸어준 이들이 참 많았는데. 온기만 생생할 뿐 기억은 흐려져 있다.

장례가 이어지던 동안 영정을 앞에 두고 디오니소스를 떠올렸었다. 주신(酒神)은 태양의 신 아폴론으로 이어졌었다. 어둠과 빛, 무질서와 질서, 감성과 이성. 두 신의 잔상 위로 삶과 죽음이 겹쳐졌다. 나는 왜 산 자의 눈으로 넘어다본 죽음에서 어이하여 축제의 열기와 냄새를 맡았던 걸까. 무질서와 난동이 난무하는 디오니소스적 세상이 남긴 눅진함에 둘러싸여 주변을 둘러보았었다. 상복을 갖춰 입고 곡을 하고 슬픔을 머금고 눈물을 쏟아내고.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카오스였다. 엄숙하기 그지없는 장례식에서 나는 빅뱅의 혼란을 느꼈다.

파문도 파장도 잦아든 고요한 저녁. 경계에 서 있던 시간을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죽음은 아폴론적이라기보다는 디오니소스적이라고. 삼일장, 오일장, 칠일장, 삼년상, 순장, 초종, 습, 렴, 조상, 문상, 치장, 천구, 발인, 급묘, 반복, 우제. 장례 절차는 조밀하게 재단된 순서로 이별을 딱딱하고 엄숙하게 포장해 두었다. 망자의 몸을 수습하는 데서부터 죽은 이를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는 일까지, 상례는 자로 재단한 듯 반듯한 절차 속에 이별을 위치시켜 두고 있다. 회복할 수 없는 상실을 딛고 서서 삶으로 고개를 돌려야 하는 남겨진 자들. 헤어짐을 대면해야 하는 이들에게 살아감은 축복이라기보다는 벌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가슴속 혼란과 절차적 질서 정연함 속에서 죽음을 배웅하기 위해 피워 올려야 하는 삶의 온기는 불씨가 아닌 눈물 이리라.

누군가를 떠나보내기 위해 마련한 공간에서 사념에 젖어드는 것은 그 죽음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일 터. 이별 앞에서 죽음을 곱씹을 거리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일 터. 영원한 이별이 무엇인지 온전히 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 터. 애도에 잠기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을 수밖에 없는 살아있음이 아려온다.

죽음을 기리는 방법은 제각각의 견고한 벽을 두르고 있다. 상실을 마주해야 하는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가 솟아오르고, 차갑게 식었다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이 무질서는 아직 속이 굳지 않은 이들의 맥박일지도 모른다. 부추 위의 이슬은 쉬이도 말라라.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사람 죽어 한 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나. 해로가(薤露歌)를 읊조리며 눈물을 쏟아낸다. 짜디짠 구토다. 살아있음이 찬란해서가 아니라 살아냈음이 눈부셔서 내놓는 뱉어냄이다.

경건하고 차분해야 할 장례식장에서 본 차가운 들뜸. 그것은 떨림이었다. 까무룩 감겨오는 부은 눈을 치켜뜨며 지난날을 이야기하고 속을 덜어내고. 목숨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숙명을 대면하는 데서 오는 불안과 초조, 수용의 긴장감이 우리를 감싸주고 있었던 것이리라. 기쁨에만, 뜨거운 것에만 들뜸이 있는 게 아님을 죽음을 통해 배운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하는 슬픔 속에도 들뜸이 있다.

이별이 남긴 차디찬 열기를 뼈에 새긴다. 손을 잡고 앉아 떨어진 꽃잎이 생기를 잃어가는 것을 막연히 지켜보고 있던 망연자실함의 붙듦을 가슴에 조각한다. 국화가 피고 지기 좋은 계절. 꽃잎 하나가 떨어진다. 바람에 날려가는 가련한 꽃잎이 남긴 파장이 무겁게 가슴을 덮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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