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은 거다. 아니,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싶은 거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 최면 인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으면 끝없이 의심하며 살아야 할 테니까. 어깨에 멘 짐을 누구에게도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은 징벌과 같을 테니까. 믿음을 둘러싼 알록달록한 포장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진짜 믿음이라고 부를 수 있을 이가 얼마나 될는지.
타자의 마음을 얻는 것은 세상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는 말을 잘 못한다. 그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내 촉수가 지나치게 예민하고 섬세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믿는다는 것이 내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잘못의 활시위를 나에게 돌릴 것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내 사귐은 더디다. 누군가 가까워지려고 하더라도 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이라며 콧대를 높이게 된다.
생각해 보니 믿음을 갈구해 본 적이 많지 않다. 눈앞에 닥친 일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버겁기도 했고 요행히도 목말라하지 않아도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와 드려 터진 나를 인고의 노력으로 기다려준 사람들이 때마다 몇은 있었기 때문이다. 게으른 나는 더디게더디게 만남을 이어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일 것. 가장하지 말 것. 진심을 다할 것. 그것이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상대가 어떤 거리를 설정하건 내게 사귐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투명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관계에서 기대하는 것이 없었기에, 관계에 기대야 하는 위치에 나를 놓아두려 하지 않았기에, 그리하여 누군가 무엇을 대가로 해 주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세간의 길을 따라야 할 필요가 내게는 없었다.
믿음 줄 세우기를 본다. 의도하지 않게 내가 소외당하기도 하고 나로 인해 누군가가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마음이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구조의 몫이 반 이상이다. 상황과 지위, 이해관계와 욕심 등에 따라 거리감도 달라진다. 마음이 늘었다가 줄었다가 그도 여의치 않으면 튕겨 나갔다가. 믿음의 고무줄놀이다. 그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사람인지 상황인지 그도 아니면 어리석음 그 자체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손에 쥔 것이 많아진 이들의 믿음 처리 방식을 본다. 마음을 내주는 일에 순번이 매겨지고, 거래가가 책정되어야 하는 세상에 기거하는 사람들. 수많은 관문을 관통해야만 겨우 신뢰의 출발지점에 이를 수 있는 경주는 무엇을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소모전인지. 마음을 주었다가 거두어가는 과정을 가만 들여다본다. 그 속에 두려움이 깃들어 있다. 믿음 안에 불가사의한 불신이 있다. 등 돌림을 방지하기 위한 길들임이 그 안에 있다. 줄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 거기에서부터 착각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관계에 갑옷을 입히게 된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무장해제로 말을 걸어오는 진심에서 등을 돌리고 그들을 소외시키게 된 것은 아닐까.
색색이 칠한 믿음을 장착하고 새총 놀이를 하는 이들의 빈손에서 바람의 스침을 듣는다. 허무한 바람 소리에서 그들의 속내를 읽는다. 내게 주어진 모든 선택은 나도 처음이기에, 나도 세사가 서툴고 두렵기에, 신뢰가 배신이 되어 돌아오는 데 지쳤기에 믿음이라는 이정표를 쥐여줄 사람이 필요했다고. 쥔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믿음에 순서를 세워둘 필요가 있었다고. 그게 믿는 게 뭔지도 모른 채 덜컥 어른이라는 힘이 쥐어지는 자리에 앉은 내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길이였다고. 숨겨져 있던 속마음이 고개를 내민다.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는 뉴욕 시그램 빌딩 건축 당시 레스토랑 벽화 30점을 제공해 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이 있었다. 주변과의 조화, 조망권, 건물 색 등과 관련하여 시그램 빌딩은 여러모로 말이 많았던 건물이었다. 독특하고 화려한 외관의 시그램을 본 후 로스코는 지나친 호화스러움을 이유로 그림을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사색과 명상을 그림과 나란히 두며 수도승처럼 살던 로스코다운 선택인 셈이었다. 로스코에게서 믿음의 저울질이 아닌 소신의 무게감을 본다.
주변이 추켜올려 들떠 있을 때, 예리한 시선으로 무게중심의 균형을 맞춰줄 것. 모두가 손가락질할 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눈으로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내게 보증해 줄 것. 앞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길을 더듬어 나가고 있을 때 빛을 비춰주기보다는 손을 잡고 묵묵히 걸으며 시간을 내줄 것. 믿음은 응당 그런 것이어야 한다. 가진 것이나 갖춘 것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나는 과연 당신에게 그럴 수 있는 존재인가. 내 눈을 향해 믿음의 활시위를 겨눈다. 쏠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답은 가슴이, 손끝이 알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