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

by GZ

이 몰아침을 무엇이라 이름해야 할까. 책을 앞두고 한숨을 내쉬었다가 들이쉬었다가. 뱉어내는 숨에 심장이 무너지고 들이마시는 숨에 심장이 부풀어 오른다. 공기는 평온한데 속은 끊임없이 부대끼는 것은 하고 싶은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이 어긋나 있기 때문이리라.

또 하나의 성취를 위한 지점을 앞두고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 얼마나 긴 경주가 될지,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달려가 봐야 알 수 있으리라. 이제 막 길을 나서 놓고는 벌써 결승선을 그린다. 부족함을 맞서야 할 날들이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넘어야 할 길 굽이굽이 장애물인데 마음만 급하다.

격정으로 몰아쳐 댔다가 금세 나가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페이스를 조절하지 못하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칠 텐데. 급하다, 마음이. 성과를 빨리 보고자 함이 아닌데도 자꾸 조바심이 난다. 결과는 때가 무르익으면 나올 것이다. 둔한 나는 가슴을 치고 벽에 머리를 찍으면서도 결국에는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다만 밭을 가는 소처럼 묵묵히 땅을 일구어나가야 하는 날들을 얼마나 의연하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가 없다. 처음 가 보는 길인 까닭이다.

생각으로는 금세 완성해 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손은 더디고 느리기만 하다. 발상과 숙고에 기대 지면을 채우는 것과는 또 다른 작업의 결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이니까 서툰 것이 당연한데 넘어지고 구르면서 시간을 공 굴리고 있는 게 마음을 급하게 한다. 다음이 다시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리하여 그때는 조금 더 수월할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프며 어색하기만 하다.

자판을 두드리는 데서부터 시작해 호흡을 고르고 고삐를 쥐고 놓는 일까지. 수월한 게 하나도 없다. 안 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전제를 가지고 접어든 작업인데 의자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 소리를 울릴 때도, 화면을 들여다보며 자료를 찾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몸에 내내 힘을 주게 된다. 어깨가 뻐근하고 등이 당기고 턱이 얼얼하다. 잘하고 싶나 보다. 제대로 해내고 싶나 보다. 멋들어진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도 있나 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나 보다.

물길을 타야 하는데 자꾸 물에 휩쓸린다. 바다가 좋아 매주 바다를 찾아왔으면서 아직도 바다에 서툰가 보다. 물의 흐름에 몸을 내맡기면 되는데 내내 물살을 가르려고만 한다. 그게 아닐 수도 있지 않냐며 막무가내로 파도에 맞선다. 바다는 물러섬이 없고 나는 하얀 물거품을 한가득 뒤집어쓰고 어푸어푸 거칠게 숨을 토해낸다. 그러면서 듣는다. 숨 고르는 법부터 함께 익혀나가자는 파도의 말을.

다시 바다 앞이다. 바람이 일렁이고 파도가 밀려오고 물이 넘실거린다. 물길과 한 몸이 되어야 한다. 물을 타야 한다. 그리하여 물아일체 지경에 이르러야 한다. 가슴은 더디고 둔하다. 머리로 아는 것을 속은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천천히 하면 된다. 속도가 붙으면 내가 거부하려고 해도 손이 먼저 움직여 줄 것이다. 허니, 지금 해야 할 것은 시간을 지키고 앉아 물레를 돌리며 문자를 자아내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어느덧 저만치 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물길을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위로 번지는 지난 시간의 빛깔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처음 내게 손을 내민 후 한참을 기다리고 섰던 그때와 다름없이 소리 없이 내 곁을 지키고 있을 너의 전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자화상과 바다로 수렴되는 쿠르베의 그림 중 한 점을 소환한다. 부서지는 파도 위에 시름을 덜어낸다. 바다와 시간은 자연의 다른 이름일 터. 그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한다. 지금은 그것이 순리다. 섭리와 순리가 아리지 않게 나를 관통하고 있음은 투정해야 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일이리라.

La Vague_Gustave Courbet_1870.jpg La Vague_Gustave Courbet_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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