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워크샵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더치 디자인 위크에 방문할 기회가 생겨 둘러보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번에서 열리는 더치 디자인 위크는 북유럽에서 가장 큰 디자인 행사로 꼽히며, 매년 약 30만명 이상의 방문객을 맞이한다. 1988년 ‘디자인의 날’로 시작된 이 행사는 점점 그 규모가 커져 2005년 더치 디자인 위크로 자리잡았다. 명성에 걸맞게 회화부터 공학 디자인까지 무척 다양한 종류의 디자인과 디자이너들을 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작품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크게 3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올해 더치 디자인 위크의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더치 디자인 위크에 관하여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나라의 디자인 행사들과 성격이 다른 더치 디자인 위크의 특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경험해오던 디자인 페어와 달리, 도시 전체가 디자인 위크의 무대인 셈이다. 꼼꼼히 보려면 하루이틀은 모자라다. 일주일 내내 호텔에 묵으며 행사를 줄기는 사람들도 있다. 행사의 형태는 아예 코엑스같은 큰 전시장에 ‘전시’를 목적으로 디스플레이를 해놓은 구역도 있고, 원래 사용하는 공방 자체를 일시적으로 오픈한 구역도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디자이너들의 생활 반경과 작업 양상을 날 것 그 자체로 볼 수 있어 굉장히 흥미로웠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 문제라 함은 이제 올해의 트렌드나 흥미로운 주제 따위가 아니라, 우리를 포함한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본질적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더치 디자인 위크에서는 ‘디자인 관점’에서의 재생 관련 해결책을 보다 뾰족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확인해볼 수 있었다. 신재생 에너지나 테크놀로지 관련 이벤트가 아니라 온전히 ‘디자인’을 주제로한, 디자이너들이 모인 행사에서 신재생의 가능성을 선보였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실제로 더치 디자인 위크의 모토 중 하나가 ‘The future requires responsibility’ 임을 생각할 때, 환경 친화적 기술과 아이디어들은 올해 가장 눈여겨봐야할 키워드라고 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혁명에 따른 기계화, 자동화와 같은 것들은 인간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최대한의 결과를 얻게끔 했다. 덕분에 우리의 일상은 더욱 풍요로워졌고, 편리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디자인’ 위크라고 불리우는 이 곳에서 이토록 많은 수공예품을 확인할 수 있음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확실한 것은 시대 및 기술의 발전과 수공예품의 몰락이 절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이 있으면 항상 ‘반’이 따르는 법. 획일적인 상품들이 쏟아질수록 어딘가 모질고, 자유곡선형태의 무언가를 찾기 마련이다. 이번 더치디자인 위크에서도 이와같이 거칠고 어딘가 정돈되지 않은, 그러나 아름다운 수공예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특히 모든 것이 자로 잰듯 떨어지는 현대사회에 공예가 주는 유연함은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장르 불문의 Hybrid를 세번째 키워드로 뽑았다. 다양한 장르가 결합되고 융합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비단 최근만의 일은 아니나, 그것의 방향성이 단순히 디자인+ 공예 정도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 기술과 결합되어 그 가능성을 선보였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번 디자인 위크는 CES같은 유형의 기술 박람회는 아니지만, 신기술을 활용한 제품이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가시화 하거나, 보다 실험적인 디자인을 구체화 함으로서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외 흥미로웠던 작업물들
소리 데시벨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도록 시각화한 상품
해당 사의 제품은 소리의 출처를 인식하는 input 장치로 부터 받은 정보를 색으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진다. 더 쉽게 말하자면, 열화상 카메라처럼 소리가 나는 부근의 색이 붉어지는 것이다. (예를들어 카메라에 대고 말을 하면, 입 부분이 붉어지는 식.) 해당 프로덕트를 보면서 여러가지 떠오르는 시나리오들이 있었기에, 언젠가 꼭 국내에 상용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퀼트 공예방식과 결합된 가구 브랜드 2가지
텍스타일 아트를 라이프 스타일에 접목시킬 때 참고할만한, 아주 바람직한 예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 두가지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협업했을 과정이 잘 상상되었다.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새로운 협업을 해보고싶다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즐기는 방법
관람객에게 모두 큰 종이 지도가 주어지지만, 종이지도로 길을 찾는 것은 익숙지 않은 방법이었다. 따라서 리플렛에 있는 여러가지 스튜디오 중 거점 혹은 가고싶은 스튜디오들을 중심으로 구글맵에 미리 등록을 해두었다. 또한 자전거 배려가 정말 잘되어있는 도시였기에,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다니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관람객이 자전거를 이용한다. (신호등 앞에 수십대의 자전거가 줄서있는 기이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관람 일정의 경우 당일치기는 매우 아쉬울 것이고, 최소 2-5일은 머물면서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오픈 스튜디오의 경우 디자이너들이 상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작품 구경만 하지 않고 간단한 대화를 나누거나, 명함이라도 받아놓기를 권장한다.
마치며
프로덕트씬에 몸담기를 희망한 디자이너 꿈나무가 된 이후로, 나의 관심은 회사 혹은 기업 생태계에 그쳐왔다. 또한 빠르게 변하는 사회를 누구보다 뾰족하게 읽어내고 그걸 녹여낼 줄 아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다양한 유형의 스튜디오, 디자이너들, 그리고 그들의 작업방식과 생각들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빠른 조류에 몸을 내던지지 않더라도, 잔잔한 호수같은 곳에서 묵묵히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의 방식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전세계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었다. 보다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노력을 그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