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와 예술교육에 관한 고찰
저는 독일 브레멘 예술대학 (Hochsule für Kunste)에서 약 1년간 방문학생 신분으로 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지금부터 약 1년간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하고자 합니다.
바우하우스는 약 4년간 운영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현대 디자인에 남긴 산물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현대 디자인 교육의 토대는 바우하우스에서 시작된 것을 이어온 형태이며, 도시의 마천루를 180도 바꿔놓은 유리와 철근의 조합 역시 바우하우스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의 행위는 곧 격변하던 시기에 이정표를 내딛는 실험장이자 산업혁명 이후 일어난 혁신의 장이었다.
독일로 방문학생을 떠난 것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와 같은 ‘근간’에 대한 열망이었다. 한국에서의 학교생활과 인턴을 비롯한 활동들은 매우 의미 있었지만, 동시에 이것들이 세상을 지나치게 근시안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주로 현재 일어나는 문제에 집중했고, 그를 고민하고 해결하다 보면 먼 곳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탐구하기보다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나는 IT분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빨라지는 세상의 흐름을 더 빨리 좇아야만 했다. 물론 여전히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더 늦기 전에 느림을 경험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는 디자인이 시작된 나라에서 외부의 어떤 것 때문이 아닌 순수 의지에 의한 배움과 행함을 경험하고 싶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독일의 학교에서 본 작품들은 디자인 주체 본인에 관련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서의 디자인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해 왔던 나에게, 개인의 심오한 이야기를 담은 디자인들은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곳에서 ‘본인이 관심 있는 주제’라 함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 리서치를 시작하고 조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본인이 오랜 시간 피부로 느껴오거나 경험해 온 관심사를 의미했다. 그리고 이 관심사는 전쟁, 트라우마, 성 소수자, 페미니즘 등 한국에서 비교적 ‘예민한’ 문제로 일컫어지며 기피되던 주제들 역시 포함하였다. 외부에서 많은 리서치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본인의 이야기 혹은 주제를 시각적으로 승화시키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그들의 (시각적) 표현 방식은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웠으며, 완성도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전형적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기술은 ‘꼭 쌓아야 하는 덕목’이 아니라 ‘나의 것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으며, 이것은 첫 문단에 언급한 바우하우스가 기술을 다루는 방식과도 무척 닮아있었다.
이 모든 것을 관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디자인의 목적 자체가 기능하기 위함이 아니라면’이라는 가정을 자주 머릿속에 품게 된다. 기능하기 위한 디자인이 아닌 것들은 직접적으로 우리 생활에 이로움을 주지 못할지언정, 보여주는 것으로 하여금 우리를 생각하게 하거나 행동하게 했다. 사실 이는 ‘시각 언어’라는 관점에서 어찌 보면 가장 기능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와 같이 시각적 트리거를 제공하는 것 만으로 사람들을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은 종종 기능적 디자인보다도 고차원적 노력을 요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독일에서 내가 경험한 학교는 정말 체계가 없는 편이었다. 수업과 과제, 프로젝트를 포함한 많은 부분이 학생의 자율성에 의지했다. 한국에서 매 학기 15주로 짜여있던 교육 내용과 종강 후 내 손에 쥐어지는 결과물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이곳의 체계 없음에 적응한다는 것은 꽤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꽤 자주 출석률이 매우 안 좋거나, 과제 진행률이 늦거나, 혹은 수업의 진행 자체가 매우 더뎠다. (한 학기가 끝나는 날 기획안을 발표하기도 했으니) 그러나 놀라웠던 것은, 그러한 뜸 들임에 비례하는 힘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궁금했다.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우리는 학교 밖을 벗어나 보다 근본적인 교육 정책이나 방식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디자인 교육을 제외하더라도, 독일은 사색을 많이 하는 나라 혹은 노벨상 많이 받은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패전 이후 독일에 드리운 그림자는 많은 사람들이 죄책감에 대해 생각하게 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훨씬 더 이전에 행해진 1800년대 여러 제도 개혁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독일의 교육 과정에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려는 노력이 곳곳에 묻어있다. 특히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대학까지 무상교육 (혹은 무상교육에 준하도록)을 지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교육비 혹은 그에 비례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할 생각공간조차 떼어서 사색에 활용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래 제목은 실제로 내가 다녔던 하교의 지난 학기 이론수업 명을 번역기로 번역한 것이다.
식민성 해체 : 디자인과 패션에 대한 탈식민지적 관점
사진과 사회 :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묘사하는가?
기술자본주의 하의 오염된 신체, ‘발전’ 양날의 약속
예술과 기술 관점에서의 하이데거
철학이 묻어있는 디자인 교육은, 사상이나 이론의 주입보다는 그 자리에서 각각의 맥락들이 모여 나누어지는 대화의 장에 가까웠다. 개인적인 일상과 경험, 기억이 해당 주제를 두고 나누는 것은 그 어떤 기존 이론보다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론수업이 대부분 독일어로 이루어지는 탓에 많이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들었던 수업들은 교수자의 수업과, 그에 대한 학생의 경험 논의 비율이 거의 비슷했다. 어떤 수업은 후반부 5-6회 정도를 오로지 학생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준비한 내용을 발표하고, 그에 대해 논의하는 것으로만 구성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는 입장을 정리하여 손을 들고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커피마실 때처럼 의견을 내었다. 때로는 그 의견이 대립되고 격해질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건강한 방식으로 해결되거나 마무리되었다. 나에게는 생경하면서도 유의미한 순간들이었다. 그것은 기능적으로 어떤 효용도 없어 보이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 있는 예비 디자이너에게 ‘이 주제 논의 경험’이라는 세포 하나를 심어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사색을 경험한 자들의 창조는 ‘덜 직관적’이었다. 실제로 독일에서 보아왔던 디자이너들의 전시나, 학교 학생들의 전시, 타학교 학생들의 전시 등은 때로는 순수예술처럼 느껴졌다. 항상 주제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끔 했고, 깊은 곳에서의 기억을 끄집어내게끔 돕기도 했다. 이것은 관람객이나 사용자로 하여금 일상에 미세한 균열을 내는 행위였다. 그리고 나는 극도로 다른 교육환경을 (짧게나마) 경험한 입장으로서 이러한 사색이야말로 가장 본질적 창의성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경험한 학교가 종합대학이 아니라 예술학교인 탓에, 지나치게 상업성이 결여된 몇몇 경우들로 일반화하는 것일지 모른다. 따라서 이 글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독일 예술학교를 경험한 학생의 일종의 체험담처럼 가볍게 소비되었으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제외한 타 전공 역시 철학과 사색에 기반한 교육적 토대가 학생들에게 미친 영향이 이미 증명된 바가 많이 있으며 한국과 비교했을 때 이는 유의미한 차이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한번쯤 사색하는 기회로서 활용되면 좋겠다.
교육에 관해서는 특히 융합형 혹은 도제식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것은 다음 편에서 이야기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