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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Jul 13. 2023

엄지, 뭉치, 딱순이와 우리 모두의 이야기

20230713


해리포터 시리즈의 세계관 중 『세스트랄』이라는 마법 생물의 특별한 설정을 좋아한다. 박쥐의 날개가 달린 검은 말의 형상을 한 이 동물은, 죽음을 목격한 자의 눈에만 보인다.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웅앵웅’의 하드코어 흑화 버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극 중의 가벼운 비중에 비해 굉장히 무거운 철학적 상징성을 가진 캐릭터다. 해리는 세드릭 디고리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후에야 『세스트랄』이 ‘말 없이 달리는 마차’를 끌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루나 또한 엄마의 죽음을 보았던 경험으로 『세스트랄』을 볼 수 있다. 같은 것을 본다는 이유만으로도 해리와 루나는 친밀해진다. 겪기 전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오로지 존재의 상실을 비로소 온전히 이해하게 된 사람들만이 함께 느낄 수 있는 어떤 것. 스푸키한 외형과는 달리 의외로 아주 온순한 성질을 가진 『세스트랄』의 특성마저 조용한 위로처럼 느껴진다.




고양이 엄지는 시한부였다. 악성종양을 진단받았을 때, 손쓸 방도도 없이 이미 종양이 엄지의 작은 몸을 집어삼켰고, 원장님은 길어도 한 달, 예상으로는 2주 정도 남았다고 했다. 으아니, 의사 양반, 2주라니요. 당장 2주도 너무 짧다고만 생각했었는데 하늘이 무심하게도 암 판정 고작 일주일 만에 나는 아이를 잃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급격한 체중 감소로 처음 병원을 찾았던 날, 혈액 검사 결과 갑상선 기능 저하증 때문이었단 걸 알았을 때만 해도 원장님과 나는 너무 다행이라고 하며 심지어는 웃었다. 그래도 확실한 원인을 찾았고, 치료하면 충분히 나을 수 있는 병이니까.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려면 평생 호르몬제를 먹어야 한댔지만 만수의 신부전과 심근비대증, 짧짧이의 전염성 복막염, 토르의 횡격막 허니아,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일지도 모를 초롬이의 간질 발작 등 다사다난했던 굵직한 질환들을 함께 겪은 우리였기에 어쩌면 컨트롤이 가능한 대사질환쯤은 상대적으로 그리 높은 난이도가 아니었다. 적어도 치료 약이 존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직은 충분히 있다는 거니까.


호르몬제 투여를 시작하고부터 체중이 살짝 오르는가 싶더니 다시 허무하게 내려갔다. 대응으로 복용량을 조금씩 늘렸다. 그래봤자 몸무게가 다시 오르기는커녕 하루하루 유지만 해도 다행인 수준이었다. 호르몬제가 안 맞나 싶어서 다른 호르몬제로 약을 바꿔봤다. 두 번째 약은 엄지에게 더 맞지 않았다. 3살 된 성묘의 체중이 1.5 kg 대까지 떨어졌다. 척추의 골격이 육안으로도 드러나 보일 정도였고 ‘피골이 상접 한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합병증이 생겼거나 또 다른 제3의 원인이 있는 것 같은 직감이 들어 추가 검사를 요청했다. 그렇게 알게 된 간에서의 악성종양. 첫 검사 때만 해도 간 수치엔 별다른 이상이 없었으니 그 짧은 몇 주 동안에 엄청난 속도로 전이된 거였다. 애가 겨우 주먹만 한데, 그 속에 주먹만 한 암 덩어리가 가득 차 있다니. 결론적으로 갑상선 문제도 애초에 종양으로부터 기원했을 거라 추측하셨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남은 시간을 편안히 보내게 해 주는 것뿐. 더 이상의 호르몬제는 무의미했기에 진통제를 처방해 주셨다. 건네받은 일주일 치의 약. 이 약을 다 먹이고 나면, 우리가 다음 주에 또다시 약을 타러 올 수 있을까, 엄지야.


치료 중 잘 먹어도 계속 살이 빠져서 속상했다가, 잘 먹던 밥마저 먹는 양이 점점 줄었다. 나중엔 그나마 적은 양이지만 아직 스스로 먹기라도 해주니 그저 고마웠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이라도 더 먹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먹길 거부하는 아이에게 강제 급여를 하게 되면서, 끝내는 제발 물 한 방울만이라도 더 삼켜 주길 바라게 되었다.

어차피 곧 죽을 녀석에게 강급과 물 한 모금이 뭐 그리 큰 의미가 있겠냐마는, 단순히 하루라도 더 연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갈 때 가더라도 배곯지 않고 입 마르지 않게 편히 보내기 위함이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말년에 변비로 고생하다 간 만수의 숙변을, 할 수 있을 때 제거해 주지 못한 게 아직도 한으로 남아있다. 아파서 먹는 양이 줄면 그만큼 장운동이 부진해지고, 소화가 원활하지 못하니 스스로 변을 보지 못한다. 그렇게 변비가 오면 배가 불편하니 더욱 먹기를 거부하고 장기는 제 역할을 점점 멈추고... 이런 증상들의 악순환. 몇 년이 지난 일임에도 마지막에 편안한 몸 상태로 보내지 못했던 것이 큰 죄책감으로 남아있다. 그러니 절대로 별것 아닌 것이 아니다.


엄지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커지는 암이 온몸에 채 퍼지기도 전에 한없이 무력하게 그렇게 곧 죽을 테지만 조금이라도 덜 힘든 몸으로 보내고 싶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 조금만 더 괜찮을 수 있다면.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기필코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싫다는 애를 붙잡고 억지로 먹이고 관장을 해줬다. 돌덩이 같은 묵은 변을 꺼내주고 나면 그때만은 너의 표정이 훨씬 편해 보이긴 했지만 정작 그게 너를 위한 건지 나를 위한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더라.


엄지는 내가 만수를 통해 이전에도 겪었던 그대로 매일매일 꼬박꼬박 단계별로 철저하게 나빠져만 갔다. 그다음 단계는 또 무언지 내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게, 아이의 상태가 내 예상을 조금도 빗나가지 않는다는 게 미어지게 괴로웠다.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다. 여기가 지옥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가 지옥인 걸까. 결국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하여간 나는 그날 먹인 그 약이, 엄지가 먹는 마지막 진통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벽에 ㅅㅎ언니에게 오늘 시간이 되느냐고 물어봤다. 언니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챘다. 다른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간 된다며 같이 가겠다고 해줬다.


퇴근하고 약속 시간에 맞춰 엄지를 데리고 나왔다. 이동장을 언니 차에 태워두고서 마실 것 좀 가지러 가게에 다녀온 잠깐 사이, 언니가 엄지를 쓰다듬으며 펑펑 울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 새끼가 아니라 지 새낀 줄 알겠다. 하긴, 엄지가 길에서 살던 시절부터 사고로 수술했을 때도, 그 후 우리 집에 데려와 지낸 최근까지의 모든 일들도 간접적으로나마 다 지켜봤으니 그럴만했다. 언니도 딱꿍이를 보낸 적이 있고, 살구를 묻어줄 때도 함께했었으니까.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프로페셔널 울보이기도 하고.


.


우리는 엄지의 몸이 가마에 들어가는 장면을 함께 보았다. 엄지는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았다. 거기 남은 건 엄지가 사는 동안 머물던 작고 예쁜 몸과, 죽는 날까지 고통을 준 암 덩어리뿐이었다. 그놈의 좆같은 암 덩어리를 드디어 불 구덩이에 태워 죽인다 생각하니 속이 다 시원할 지경이었다.

화장이 진행되는 사이 우리는 눈물을 닦고 바람도 쐴 겸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실컷 울고서 피우는 담배 맛은 아는 사람만 안다. 둘 다 코를 삼키며 서로의 더 못생겨진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남의 자식 떠나 보내는데 왜 지가 저렇게 나보다 더 울 일인가. 미친년. 언니 집에도 엄지만큼이나 아픈 녀석이 있어 마음이 더 쓰였나 보다. 우리는 집에 먹지도 싸지도 못하는 아이가 있기에 우리가 밥을 먹어도 미안하고, 똥을 싸도 미안하다는 이야기들을 했다. 너희가 그렇게 아픈데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게 미안하다고. 언니는, 이런 일들이 이렇게나 힘듦에도 지금까지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어갈 내가 걱정되는 한편 대단하다고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짓을 더는 견뎌낼 자신이 없다는걸.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팔자려니 하고 받아들여야지,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어차피 겪어본 일들의 반복이겠지 했던 모든 생각들이 오만한 착각이었다는 걸. 사랑을 주고받은 존재의 죽음이란 절대로 경험치가 생길수록 무뎌지는 그런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겪을수록 더 큰 두려움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남은 죽음들을 어떻게 또 버텨나가야 할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엄지를 보낸 다음 날엔 우리가 다니는 동물병원의 원장님이 반려하시던, 같은 시기에 아팠던 고양이 뭉치도 엄지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몇 달이 더 지난 현재, ㅅㅎ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딱순이도 며칠 전 같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우리는 또다시 못생겨진 얼굴로 『세스트랄』을 마주하고 있다. 어쩌면 같은 걸 보는 이들과의 연대 속에 몇 번이고 다시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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