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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Jul 05. 2023

귀신의 집

20230705


대학교 3학년 때, 혼자 살던 자취방은 학교에서 제법 먼 곳에 있었다. 학교로부터 거리가 멀수록 방값이 저렴해졌거든. 온통 오르막길이었던 그 길을 삼십 분씩 쉬지 않고 걸어 등교해야 해서 지각이라도 하면 큰일이었지만, 사실 거리문제가 아니었다. 그 집에 나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 그 건물 전체를 통틀어 나 혼자만 사는 거였다. 3층짜리 키 작은 건물, 한 층에 3가구씩 있는 구조였으니까 8개의 빈집이 있는 건물 맨 위층에 여자 혼자서 살게 된 거였다. 집 구조나 위치, 월세로 봤을 때 그리 나쁜 조건의 집이 아니었음에도 왜 다른 세입자가 없었는지는 짐을 빼 나오는 순간까지 끝내 미스테리로 남았다.


당시에 내겐 같은 동아리에서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다.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키우는 고양이도 소개해 줄 겸 우리 집에 초대했고, 처음 놀러 온 날이었다. 학교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사는 내가 걱정된다며 자주 와 보겠노라 했던 남친. 하지만 그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묘하다만, 남친에겐 아주 가까운 친구들만 알고 있는 탑시크릿이 있었다. 바로 귀신을 보는 능력!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남들은 보지 못하는 못 볼 것들을 보았고, 그 능력은 컨디션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고 했다. (예상과는 반대로 몸이 좋지 않은 날에 더 많이 보인단다.) 본인도 겁에 질려 굳이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지만, 왠지 동정심이 드는 귀신에게는 가끔 말을 걸어 본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고. 우는 소리가 들릴 때는 있다고 했었다. 또 이동에 웬만큼 유동성이 있긴 하나(걷 것도, 둥둥 떠 있는 것도 아닌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란 애매한 표현을 했다.) 대부분의 귀신이 특정한 자리에서만 떠돈다고 했다. 뭔가 죽은 사연과 연관이 있을 거라 추측되는 그런 장소.


샤머니즘에 호기심 많은 나는 그런 설명들이 재미있어 그 친구의 말처럼 귀신이 늘 있다는 그런 장소를 자주 물어보곤 했는데, 녀석이 말한 장소는 내가 평소에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곳을 지날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쾌감과 더불어 한여름에도 느껴질 만큼 이질적인 한기가 느껴졌던 곳과 일치해서 소름이 끼쳤다. (당사자 피셜, 갑자기 왠지 춥게 느껴지는 공간은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같은 학교에 다녔던 학우들을 위해 기억나는 정보를 제공하자면, 66 계단을 지나 기숙사 후문 쪽으로 빙 둘러 올라가던 길목엔 늘 쪼그리고 앉아있는 귀신이 있고, 본관 도서관 앞 계단 2층과 3층 사이 가운데 층 천장에는 목을 맨 귀신이 있다고 했다. 학생회관의 지하 1층에는 우리가 활동했던 밴드부 동아리 방이 있었는데, 가끔 근원을 알 수 없는, 기기들의 음향이 왜곡된 듯한 무서운 소리가 나곤 했지만 어둡고 음침했던 지하의 분위기와는 달리 의외로 그곳에는 그들이 없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동아리 친구들을 위해 진실을 감추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 이상한 주장을 들을 때마다 무섭긴 했어도 나는 딱히 귀신을 믿는 것도, 그렇다고 안 믿는 것도 아니었다. 있다는 근거도 없고 없다는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뼛속까지 이과형 인간). 하지만 종교에 대한 견해와 마찬가지로 ‘귀신이 보인다’는 그 녀석의 생각은 믿었다. 단지 걔를 좋아했기 때문에 꼭 그 말을 믿으려 했던 건 아니었다. 정신 나간 헛소릴 한다기에는 머리가 상당히 좋은 편이었고, 귀신에 대한 증언은 너무나 디테일하고 생생했으며, 결정적으로 그 문제로 자기가 관심받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 능력을 저주처럼 여겼기에 더 납득이 갔다. 이 부분에 영화 [콘스탄틴(2005)]에 나오는 안젤라의 딜레마를 참고해 보자구. 물론 그 세계관은 어디까지나 영화적 설정이고, 현생에서의 사이킥들은 그냥 미친 사람이겠지만.


하여간 남친이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못하게 된 사연은 이랬다. 내가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운 사이 녀석은 홀로 내 방에 남겨져 낮잠이 들었는데, 그때 어려서부터 겪어온 수많은 가위눌림 경험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의 강력한 가위에 눌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아주 괴로웠다고 했다. ‘미안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다시는 못 오겠다’며, 우리 집에 귀신이 있을 뿐 아니라 그 건물 전체에 아주 바글바글하다고 했다. 그 정도면 오히려 이 집에서 잘만 지내는 내가 더 신기할 지경이라면서 비법까지 물어왔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 하물며 비법이랄 게 있을 리가 있겠냐? 뭐, 거실 방바닥에 마늘즙으로 마법진이라도 존나게 그렸을까. 아니면 초대형 부적을 이불 삼아 덮고 잤겠냐고. 얼떨결에 항마력 만렙의 퇴마사라도 된 줄.


그 사건 이후로 집에 있을 때마다 별생각이 다 들었다. 얼마 전 누군가 옆집 문을 계속 두드리길래 그 집에 아무도 안 산다고 알려준 적이 있었다. 문을 두드린 남자는 분명 이 주소가 맞다며 여기서 주문해서 배달 온 거라고 나에게 주소 확인까지 시켜주었고, 이상하다며, 아무도 안 살 리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럴 리가 없다고 했었던 게 기억났다. 그 상황에서는 그저 오해가 있었겠거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갔지만, 남친의 말을 듣고 나니 왠지 쎄했다. 시킨 놈이 귀신이던가, 배달 온 놈이 귀신이던가. 범인은 둘 중 하나.

이 건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귀신이 “바글바글” 하다고까지 했을까. 지금까지 별 탈 없었더라도 귀신이 있다는 걸 인지한 이 시점부터는 귀신들이 작정하고 달려들어 나도 매일 밤 가위에 눌리게 될까. 여기가 귀신 소굴이라는 게 정말이라면, 그런 안 좋은 기운들 때문에 세입자가 하나도 없는 걸까. 혹시 여기서 집단 자살이라도 있었나. 시발 뭔 살인 사건이라도 있던 걸까. 집주인은 그런 걸 은폐한 채로 나에게 싼값에 집을 내어준 걸까.

한 번 시작된 망상은 귀신에 한정되었던 두려움도 뛰어넘어 다양하게 확장되었다. 내 계약이 끝날 때까지 이대로 아무도 입주하지 않는다면, 건물에서 불이 켜진 집은 늘상 이 집 하나뿐일 텐데 혹시 모를 범죄의 타겟이 되는 건 아닐까. 누군가가 이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이 나 혼자밖에 없다는 걸 관찰한다면, 그래서 나에게 정말 나쁜 일이 생겼다고 가정한다면, 도움을 청할 이웃이 없으니 쥐도 새도 모르게 하루아침에 장기를 싹 다 털리는 건 아닐까. 그럼 우리 고양이는 어쩐다ㅠㅠ


하지만 귀신들이 무안할 정도로 나는 잘 지냈다. 그 집에서의 추억은 지금까지 n년간의 자취생활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자취의 로망’ 같은 순간들이었다. 세입자가 나뿐이니 옥상은 전세 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볕이 좋은 날에 빨래를 널러 올라가면, 주변 낮은 건물들의 알록달록한 지붕이 한눈에 보였다. 필름 카메라에 한창 심취해 있던 때라 나는 거기서 많은 사진을 찍었다. 운이 좋으면 지붕 위를 넘어 다니는 고양이 가족도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역시나 멀었지만 오는 길 중간엔 3일마다 큰 규모로 서는 시장이 있었고 집 바로 앞에는 그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가 있어, 야무지게 장을 봐 와 혼자서도 꼬박꼬박 집밥을 해 먹었다. 가끔은 옆 건물에 1층에 있는 국밥집(‘향아’)에 갔다. 식당 부부는 집에 가져가 먹으라며 김치를 따로 더 챙겨주시기도 했고, 그 집 아이가 학교에서 그려온 그림을 보여주며 자랑하곤 했다.


어느 주말엔 간만에 달게 늦잠을 자고 있는데 밖이 시끄럽길래 창문을 열고 내려다보니 웬 영화를 촬영하고 있더라. 영화 좀 본다 자부했던 내 눈에도 아는 배우는 하나도 안 보이길래 독립영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영화는 후에 저예산 영화의 역사를 바꾼 명작이 되어있었고, 박진감 넘치는 추격씬의 배경에 내가 살던 그 집이 떡하니 나왔다. 주인공인 두 남자는 그 영화를 계기로 인지도를 넓혀 지금은 메이저급 연기파 배우가 됐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3학년까지 마치고 4학년이 되기 전 2년간 휴학했던 내가 영화관 영사실에 근무하게 되면서 마침 입소문을 타고 상영관을 늘려가던 그 영화를 내 손으로 직접 틀게 되는데...

바로 김윤석, 정경호 배우가 나온 [거북이 달린다(2009)]였다. 촬영 당시만 해도 집 앞에 누군지도 모르겠는 듣보잡 사내 둘이 꼴에 영화배우라며 건물 앞을 가로막고 요란하게 촬영하고 있길래 자다 깨서 짜증만 졸라 내고 사인 한 장 받아 놓지 않았었다. 모자란 년, 이 모자란 년. 지금 내 집 앞에서 촬영한다고 하면 사비를 털어 커피차를 대접하고 삼두근이 불타도록 야광봉을 흔들고 있을 텐데.


그 사건이 그 집에 살면서 그나마 가장 비극적이던 기억이다. 글쎄, 하나 더 추가하자면 그게 정말 귀신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추운 겨울을 보냈다. 살면서 그렇게 힘든 겨울을 나 본 적이 없었을 정도다. 사방이 빈집이라 보일러를 틀어도 보온이 유지되지 않았고, 전기장판에 의지해 자려고 누워 두 겹의 두꺼운 이불을 덮으면 등은 따듯했지만 온 방의 공기가 차가워 입에서는 입김이 났다. 코가 너무 시려 코끝이 동상에 걸릴 것만 같았다. 원룸에서 존나 설산 캠핑 체험. 생활비가 궁한 학생 때라서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보일러를 마음껏 틀 수도 없었다. 나는 그때의 내가 불쌍해서 지금은 아무리 가스비가 많이 나온다고 해도 절대로 궁상떨며 살지는 않는다.


내가 염병할 귀신의 집에서 끄떡없이 잘 지낸 것에 대해 남친은, 내 기가 개쎄던가 아니면 고양이가 항상 나를 지켜주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본인만의 분석을 내놓았다. 영혼이 깨끗한 동물들의 눈에는 귀신이 적나라하게 보이고, 두려움 없이 똑바로 눈을 마주칠 수 있기에 오히려 귀신이 동물들을 무서워한다고 했다. 뭐, 믿거나 말거나.


귀신으로부터 언제나 나를 지켜주며 춥고 외로웠던 시절의 나에게 가장 큰 의지가 되어준 나의 절대 고양이, 지금은 ‘고양이 귀신’이 된 무지개 너머의 만수에게 이 글이 닿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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