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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Jun 29. 2023

그건 니 사정이고

20230629


그 녀석은 내 대학교 선배를 닮아 별 이유 없이도 괜히 정감 가던 손님이다. 거의 개업 초기 때부터 봤을 만큼 이 동네서 오래 살았던 것 같은데. 일도 늘 열심히 하고 워낙 밝은 성격에 요즘 세대답지 않게 예의도 갖춘 친구였다. (유니클로 스텝으로 시작해서 매니저까지 만렙을 찍었는데, 몇 해 전 전국민의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대부분의 매장이 철수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이직했었다.) 가끔 우리 가게엔 없는 다른 제품을 원할 때 나에게 부탁해서 내가 몇 번 구해다 준 적이 있었고, 그러면 되게 고마워했었다. 떼잉, 니가 팔아주는 건데 내가 고맙지.


직장이 바뀌고부터는 생활 패턴도 바뀌었는지 내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에 주로 왔었다. 그렇다 보니 소식을 모르다가 그 시간의 근무자에게 최근의 상황을 듣게 됐다. 요즘 그 친구의 머리를 본 적이 있냐는 거였다. 새벽에는 방문이 거의 없어 예전처럼 보기는 힘들지만, 생각해보니 최근에 유난히 머리숱이 없어 보여 조금 놀랐던 게 기억났다. 원래 머리숱이 저리 없었나. 자세히 본 적이 없어서 내가 몰랐던 걸까. 아니면 탈모가 일찍 진행된 걸 수도 있겠지. 가게 연차가 쌓여 가면서 저 친구도 이십 대에서 어느새 삼십 중반이 됐으니까. 콤플렉스일 수도 있는 사적인 문제라 굳이 언급하지 않고 못 본 체했었다. 근무자에게 들어보니 단순 탈모가 아니라고 했다. 가족력에 고질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심각한 불치병이 있었는데(자세히는 모른다), 최근 검사 결과 본인도 유전되어 증상이 발현돼 젊은 나이에 시한부를 선고 받았다고 했단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올가을쯤 호주로 워홀 갈 거라고 무척 신나 했었는데. 병원에서는 내일 당장 잘못되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다고.

그래서 최근에 그렇게 술을 마셨나 보다. 술을 좋아해 자주 마시긴 했어도 취할 정도로 마시고 온 건 본 적이 없었다. 취한 상태로 와서 또 술을 사 가길래 뭔 일이 있긴 있는가 보다 했었다. 있어 봤자 여자친구 문제 정도겠거니 했지, 어휴.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젊은 친구가 어쩌다가.


이야기를 들은 지 며칠 되지 않아 녀석이 새벽에 담배를 사러 들렀다. 계산을 해 주다가 무심코 얼굴을 봤더니 오늘은 모자를 쓰고 왔다. 점점 심해지는 탈모 때문에 본인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모자를 쓰고도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빈 게 티가 날 정도로 보였다.


“...괜찮아요?”


갑자기 그냥 튀어나온 말이었다. 주어도 없이 뭐가 괜찮냐는 건지. 괜찮지 아니하면 또 어쩌겠다는 건지. 뭘 어쩌자고 물은 말은 아니었지만 그냥 물어보고 싶었다. 괜찮은지 알고 싶었다.


“네... 자살은 안 하려고요.”


개떡같은 질문도 찰떡같이 알아 들었다. 근무자에게 소식을 들었겠거니 했나 보다. 눈치 백단 센스쟁이. 근데 자살이라니, 맙소사. 안 한다니 천만다행이다만, 자살까지 생각했단 걸 나에게 얘기할 정도로 우리가 깊은 관계는 아니니까 조금 불편한 답변이긴 했다. 투 머치 인포메이션. 그래도 뭐, 가까운 사이보다 오히려 친분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속내를 내보이는 게 더 편할 때도 있는 거니까. 그런 상황에서는 상대와 다신 마주칠 일이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거침없이 솔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친구와 나는 그전부터 보았고, 내가 여기서 가게를 하는 한, 그리고 그가 살아있는 한은 또 보게 되어있다. 그래서 부담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기엔 꽤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자살하지 않기로 결정하기 이전에, 그걸 할지 말지 고민했다는 말일 테니 마음이 아팠다. 저렇게 젊은 나이에 어차피 곧 죽게 된다는 걸 미리 아는 삶은 어떤 삶이란 말인가. 얼마 안 가 죽게 될 거, 지금 당장 죽는 것과 뭐가 다를지 따져보는 그 고민은 또 얼마나 무거운 고민인가. 자살만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저 말을 웃으면서 할 만큼 해탈한 그 마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이란 말인가.


“괜찮으면 됐어요.”


다른 건 됐고, 네가 괜찮다면 그걸로 되었다. 주먹 인사를 하려고 주먹을 내밀었고, 그는 그걸 보고 웃으며 주먹을 맞부딪혀 주었다.


“고마워요, 누나.”


“내가 고맙지. 잘 들어가요.”


고마웠다. 여전히 이곳에 와 주어서, 주어진 인생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살기로 해 주어서, 맥락도 없는 내 물음에 쿨하게 대답해 주어서. 우리는 이 친구를 얼마나 오래,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를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고 그저 동네 가게로만 인식해 주어서 고마웠다. 네가 고민했던 자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 주어서 몹시 고마웠다.


많고 다양한 사람이 오가는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게 때론 이렇게 나에게 짐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고유한 사연들이 있고,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으로 와 혼자서 타지 생활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 지역 특성상 쉽게 외로워한다. 그 외로움이 얼마나 연약하고 위태로운지, 조금만 그 마음을 알아주어도 강하게 의지하고 싶어 한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잠깐이나마 위로가 되어준다면 나도 마냥 뿌듯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 코가 석 자다. 나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고 이미 내 문제만으로도 벅차다. 내가 아무리 이타적인 성향을 타고났다고 해도 그것도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의 얘기다. 공감 능력은 또 쓸 데 없이 좋아서 누군가의 고민과 아픔을 결코 가벼이 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손님과는 적당히 가벼운 사이여야만 한다. 그래서 저 친구의 자살 언급에 대해 깊은 걱정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절대로 알고 싶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언제나 출입이 자유로운 편의점의 특성을 악용해 지들 편할 때 방문해서 자기 얘기를 쏟아붓는다. 그 시간이 우리가 바쁜 시간이건 아니건 간에 그들은 관심도 없고, 다른 손님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음에도 카운터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고는 몇 시간이고 눈치도 없이 계속 떠들어댄다. 어쨌든 뭐라도 사기는 샀고, 그래서 분명 손님은 손님이니 내 맘대로 내쫓을 수도 없다. 내가 파는 물건을 구매한다는 이유만으로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했다. 각자의 사연은 구구절절했으나 그중 누구도 우리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이곳은 엄연한 나의 직장이다. 근무 중인 사람을 붙잡고, 아무리 바쁜 척을 해도 졸졸 쫓아다니면서 자기 얘길 들어 달라는 이기적인 사람들에게는 베풀 인내심도 결국 바닥이 났다. 결정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게 되면서 확실하게 선을 그을 필요성을 느꼈다.


공병을 가져오시던 아저씨가 있었다. 매일 새벽 리어카를 끄는 일을 하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분이었다. 손님이 별로 없는 시간대라 나도 심심하기도 했고, ‘라떼는 말이야~’스러운 왕년에 잘 나갔던 이야기를 듣는 게 썩 나쁘지 않아서 자주 말을 섞었다. 한여름에 냉동고가 고장나 아이스크림이 상품 가치를 잃을 정도로 녹아버려 손해를 감수하고 주변 가게 사람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었는데(물론 다시 얼려서 나눠 먹었다. 모양이 찌그러져 먹기엔 불편했지만 맛은 그대로였다.), 그 아저씨한테도 원하시는 만큼 가져가시라고 했더니 큰 봉투로 두 묶음이나 챙기셨다. 그렇게나 많이 가져가실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굉장히 고마워하시길래 잘 드렸다고 생각했다. 아이스크림이란 게 어찌 보면 기호 식품 같은 거라 하루 벌어 하루 사느라고 밥도 겨우 챙겨 드실 아저씨에게는 제 돈 주고 사 먹을 일 없는 음식이었을 테니 그간 못 먹은 한이라도 푸는 것 같았다. 며칠 후 아저씨는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었다. 고물을 팔고 근처 시장에 들렀는데 한쪽에서 악세사리를 팔길래 내 생각이 나서 하나 사 왔다며 싸구려 귀걸이를 내밀었다. 당연히 취향과는 거리가 먼 조잡한 모양새였지만 그 마음이 고마워서 기분 좋게 받았다. 악세사리 좌판 앞에서 ‘편의점 아가씨가 이 중에서 뭘 좋아하려나’ 생각하며 한참을 고민했을 아저씨를 상상하니까 웃음이 났다.


그렇게 모종의 의리와도 같은 친분을 유지해 오던 어느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저씨는 새벽이 아닌 대낮에 술에 잔뜩 취해서 왔다. 취한 상태에서 또 소주 한 병을 계산하며, 여느 때와 같이 내가 자기 얘길 들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나는 취한 사람을 매우 싫어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민감하고 단호하며 예외가 없다. 죄송했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그 사람의 얘길 들어줄 수도 없고 그러기도 싫었다. 아니, 술이 아니더라도 이런 식의 영업 방해는 곤란하다.

다음 날 새벽, 자기가 실수했다며 어제의 일을 사과했지만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비슷한 일들이 있었고, 나중에는 만취로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 경찰까지 불러야 했다. 그쯤 되니 둘 사이의 추억이 무색하리만큼 정이 뚝 떨어졌다. 결국엔 이 주변 동선을 피해 다른 곳에서 리어카를 끌게 되었고, 그렇게 그 사람과의 우정이 찝찝하게 끝이 났다.


친분이 생겨 개인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게 실수였던 적도 많다. 언니뻘의 여자들은 주로 새벽에 연락해 내가 묻지도 않은 자신의 가정사를 갑자기 털어놓는다. 자기를 따돌리는 것 같다는, 나는 알지도 못하고 볼 일도 없을 자기 회사의 누구누구들 욕을 그렇게 하고 편을 들어주길 바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왜 그런 일이 자꾸만 생기는 건지 나는 너무 잘 알 것 같은데. 이런 건 정말 뻔한 레퍼토리라 듣는 재미도 없다. 고작 동네 구멍가게 하나 하면서 왜 손님 시댁 가족들의 불화 스토리까지 알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심지어는 약간의 친절을 보인 것만으로도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줄 착각했던 남자도 있었다(놀랍게도 한 놈이 아니다). 겨우 자기가 늘상 구매하는 담배를 내가 외우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매일같이 같은 놈이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걸 사는데 그걸 기억 못하면 그게 시발 병신 아니냐. 나는 내가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이 동네 모든 흡연자들의 취향을 알고 있다. 니꺼라서 외운 게 아니란 말이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여기는 편의점이다. 골목마다 하나씩 있는 편의점은 경쟁사보다 친절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 이후로 나는 특히나 또래의 남자들이 조심스러워 유독 불친절하게 굴게 됐다. 손해도 기꺼이 감수할 만큼 그런 오해의 상황은 극혐이다. 남편 없는 년 서러워서 살겠냐.

이모님 시간에는, 이사 간 동네의 편의점은 아직 편하질 않다면서 일부러 먼 여기까지 와 주기적으로 입을 털고 가는 여자도 있다. 청소할 시간이라 청소기를 돌리는 데도 그 소음 속에서 청소 동선을 따라다니며 계속 조잘거린다고 한다. 그래도 한 번 오면 이것저것 많이 사 가더라면서 그것 때문에라도 이모님이 참아보시겠다고 할 정도다. 여윽시 우리 이모님 기존쎄.


장사하는 입장에서, 손님과 서로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애정 어린 관심 속에 우정을 주고받는 건전한 관계는 말 그대로 판타지다. 정말이지, 호의가 계속 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 당신들의 외로움에 우리가 빚이라도 있는 것처럼 난 데 없는 책임을 묻지는 말길. 몇 마디 이야길 받아준 것만로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 ‘처절한 외로움’을 해결할 방도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없다. 여기는 그저 삼각김밥에 컵라면이나 먹고 가는 곳이지, 그런 걸 파는 데가 아니라는 말이다. 번지수 잘못 찾으셨다. 이것도 일종의 갑질이고 순한 맛의 폭력일 뿐이다. 전문 기관에서 합당한 상담료를 지불하고 원 없이 주둥이를 털어내시길 권한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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