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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Aug 17. 2023

등신 머저리

20230817


내 또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가 전화 통화를 하며 들어왔다.


“요즘 다 종이 빨대잖아. 여기도 그렇겠지. 그냥 안 마실래.”


스타벅스에서는 종이 빨대를 줘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던데. 당사 정책이라는 걸 모두가 당연하게 납득하며 그러려니 하는 것 같더라. 물론 가지고 나와서는 종이 빨대로 마시면 역겹다고 다들 툴툴대지만. 비싼 커피점에서는 종이 빨대를 줘도 받아들이면서도, 싸구려 커피를 파는 이런 데에 와서는 왜 부당한 일이라도 당한 것처럼 ‘안 마시고 말지’라고 생각하는 걸까. 값비싼 것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 기꺼이 순응하고, 싸면 안 사도 그만이라는 이런 심리는 과연 어떤 심리일까. 도대체가 커피를 마시겠다는 건지 빨대를 마시겠다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빨대는 있으면 편리하긴 하지만 사실은 없어도 마시는 데에 지장은 없는, 그냥 도구일 뿐인데.

계산대에 상품을 올려놓으며 여자가 물었다.


“여기 혹시 플라스틱 빨대 있어요?”


“예.”


“오! 그럼 아이스커피 한 잔 같이 주세요.”


역시 빨대를 마시려는 게 분명하다.


우리 매장은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 빨대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두 가지를 겸해서 사용하기엔 보시다시피 종이 빨대는 선호도가 낮아 남아 있는 플라스틱 빨대부터 완전히 소진한 후에 종이 빨대로 제공할 예정이다. 사실 플라스틱 빨대는 늘 주문하던 생분해 플라스틱 빨대인 줄 알고 잘못 시켜서 있는 거다. 인터넷 구매처럼 교환이나 반품이 가능한 시스템이 없는, 본사 물류 센터의 소모품 발주로 시킨 소모품이라서 그냥 쓰기로 했다. 실수한 내 잘못이다. 소모품 발주라고 해서 주문하면 무상으로 들어오는 건 아니고, 점포가 원가를 부담한다. 종이 빨대는 플라스틱 빨대보다 원가가 훨씬 비싸다. 편의점 원두커피라고 해서 질이 낮은 원료를 쓰는 것도 아니며 원두 기계는 정기적으로 유지 관리비도 들어간다. 이렇게 좋은 품질의 커피를 싸게 팔면 남는 것도 없으니 소모품비라도 줄여야 조금이라도 더 남겨 먹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점주들은 당연히도 값비싼 종이 빨대 대신 저렴한 플라스틱 빨대를 구비 하게 된다. 고객들도 ‘안 마시고 말지’라고 생각할 정도니까 종이 빨대를 제공할 이유는 더욱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생각해 친환경 소모품으로 갈아타려 했지만, 나 같은 년이 얼마나 되겠나. 이런 나도 종이 빨대를 발주하며 가격이 부담스러워 손이 다 떨릴 지경이었다. 이건 편의점만의 고충이 아닐 거다.


물론 생분해 빨대도 그간 말이 많았다. 일반 플라스틱보다는 분해가 빠른 건 맞지만 여러 가지 특정한 환경적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분해되므로 과연 ‘생분해(자연분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거다. 소비자는 ‘생분해’라는 이름만 하나만 믿고서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사용하며 에코라이프를 실천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은 다 착각이다. 그런 거짓된 프레임을 ‘그린 워싱’이라고 까지 부른다. 착한 소비가 아니라, 착한 척하는 소비를 부르는 기만들. 결국엔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마저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태도에 불과하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기후 변화와 환경 보호에 대해 진지해 보이는 큰 단체들은 기부자를 모으기 위해 굿즈를 제작한다. ‘지금 저희 단체에 후원하시면, ㅇㅇ을 드립니다.’와 같은 홍보들. 단체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한 브로치나 스티커부터 팔찌 같은 장신구도 있다. 소정의 기부금을 내고서 굿즈를 수령 해 단체의 로고가 있는 브로치를 가방에 달고, 스티커를 노트북에 붙이고, 상징적인 팔찌를 끼고 다니면 ‘나는 늘 동물과 자연을 생각하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며 교양을 겸비한, 요즘 사람 같지 않게 깨어 있는 존나 멋진 사회인이야’하는 이미지를 어필 할 수 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지나 싫증이 나면 다시 버려져 쓰레기가 되겠지만, 단체는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또 새로운 쓰레기들을 만들어 낸다.

스타벅스는 종이 빨대를 가장 먼저 도입하여 친환경적인 카페 문화를 이끄는 기업 이미지를 구축 하는데에 대단히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한정판 텀블러를 찍어내고 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줄이기 위한 운동에 텀블러라는 물건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나, 결국은 이것도 상업적 목적이 대의적 목적보다 더 크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텀블러를 줄까지 서서 구입하면서도 텀블러 쿠폰으로 산 음료는 테이크아웃 잔에 담아간다. 텀블러는 그 고유의 기능을 이미 잃은 지 오래다. 텀블러는 누구에게나 부담 없이 주기에도 받기에도 적당한, 꽤 실용적으로 보이는 ‘선물’로써 이용되며, 부엌의 찬장에 다른 텀블러들과 함께 나란히 진열되는 용도로 사용되는 물건이다. 도대체 한 사람에게 그렇게나 많은 텀블러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건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고백한다.)


나라고 뭐 얼마나 청렴결백하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겠나 싶다. 몇 달 전, 한 기자님으로부터 ‘편의점에 관한 기사를 쓰는데, 일하시며 힘든 이 있었다면 의견을 보태 주시라’는 디엠을 받았었다. 저번 글처럼 화장실 한 번을 가도 욕먹는 그런 상황들이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미 많이 들으셨을 것 같아 환경에 대한 것들을 말씀드렸다. 편의점의 성격상 거의 모든 상품에서 쓰레기가 나온다는 것. 즉석식품과 각종 음료수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행사 전용으로 나오는 세트 상품들은 과대포장까지 되어 나온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소비자가 구입해 사용한 후엔, 길어봐야 며칠 안엔 쓰레기로 변하게 된다. 분리수거함을 비치해 두었지만 제대로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쓰레기통이 있음에도 가게 주변은 늘 손님들이 버린 쓰레기로 널려있다. 우리 가게 주변뿐 아니라 근처 건물 여기저기에서 내가 판 물건의 포장지들이 굴러다닌다. 나는 그런 쓰레기를 줏을 때마다, 겨우 돈을 벌기 위한 목적 하나로 내가 이 구역 환경의 악화를 주도하고 생태계 파괴를 조장하는 인간쓰레기 그 자체가 된 것만 같은 자괴감에 사로잡힌다. 편의점을 운영하며 가장 힘든 점이 무어냐 물으신다면, 단연코 이런 좌절감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장사가 잘 되어도 늘 슬펐다.

이 내용은 기사에 조금도 실리지 않았다.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다음 날, 나는 이런 일기를 썼다.


『 2023.08.11.

태풍이 지나갔다. 오랜만의 큰 태풍이라 가게 밖의 화분도 걱정이 돼서 싹 들여놓고 퇴근했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다행히 무사히 지나갔다. 여기나 이 정도지, 다른 곳은 아주 난리가 났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 안 그래도 며칠 전 한 친구와 환경 이야길 하다가 거의 싸웠었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재활용하는 건 당연한 거고, 재활용품 분리수거 할 때 컵은 컵끼리 포개서 부피를 줄여야 재활용 쓰레기만 모아서 버리는 비닐봉지도 줄일 수 있다고 한마디 한 게 발단이었다. 컵을 겹쳐서 버린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유난 떠는 사람이 돼 버렸다.

친구는, 겨우 기온 상승 1, 2도쯤 가지고는 체감되는 큰 변화도 없고, 빙하가 녹는 것도 평생 갈 일 없는 저 멀리 북극이니 자기랑은 별 상관이 없다더라.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가 죽고 난 다음 세대에 벌어질 일일 테니 관심 없다고. 하지만 아이는 꼭 낳을 거라 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는 건가.

굉장히 심각하게 모든 걸 잘못 알고 있길래 현실을 알려주려고 유튜브에서 본 과학자들의 말을 빌려 들려주려 했으나(내 의견은 이미 신뢰하지 않으니까), 나에게 그런 것 좀 그만 보라면서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내가 지금 널 비난하는 게 아니고 너무 몰라서 알려주는 것뿐이며, 현실을 알고 싶지 않아 한다면 그건 현실 도피’라고 설명했지만, 내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는 자기의 생각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며 오히려 큰 소리였다.

맥 빠지고 속상했다. 가까운 사람도 설득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녀석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역시 일회용품을 소비하는 니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냐며 내 말을 지적했다. 고기를 먹으면서 무슨 비건을 지향하느냔 말과 같은 맥락이다. 최소한의 노력도 없는 자들에게 꾸준히 노력하고 알리려는 자들은 그저 등신 머저리들이고 사이비 종교단체 광신도들일 뿐이다. 지구 멸망 디데이 카운트라도 떠야 정신을 차릴 텐가.

NASA는 최근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가 앞으로 겪게 될 여름 중에서. 』


또 다른 친구는 나의 이 하소연을 듣고서 [숲속의 자본주의자]에 나온 구절을 들려주었다.


『 나와 완전히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도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면, 다른 무엇을 보호할 수 있을까. 내가 지구환경을 보호하고 싶다면,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대신해 내가 조금 더 하면 된다.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에너지만큼만 더 하면 된다. 』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과적 관점에서 볼 때, 저렇게 한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1씩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여 둘이 모이면 2이다. 누군가 하지 않는다면 내가 두 사람의 몫을 하면 된다. 하지만 하나가 아니라 아홉이 하지 않으니 저 말대로라면 나 혼자서 10을 해내야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머지 아홉의 몫을 혼자서 감당하기엔 벅차다. 열 명 모두가 각자 노력해도 10이고, 나 혼자 죽어라 10인분을 하는 게 어찌저찌 가능하다고 해도 10이다. 설득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혼자서만 한다면, 열 배로 노력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거다. 이보다 더 비효율적일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대신해 조금 더 하라니, 참 속 편한 소리 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각자가 1이 아닌 2씩 노력해 20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내년에는 더 더워질 거라고! 시발 열받으니까 더 덥잖아!!


나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기 시작했던 아까만 해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젠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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