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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알록달록 Aug 14. 2023

유료 화장실

20230814


질문 1.


늦은 밤, 간단히 마시고 잘 맥주를 사러 나온 당신. 집 앞의 편의점 앞에 도착했지만, 출입문은 굳게 닫혀있다. 문에는 이렇게 쓰여진 종이가 붙어 있었다.


『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 GS25 ㅊㅇㅇㅅ점 』


이때 당신의 다음 행동을 고르시오. (18점)


① 술은 무슨,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② 한 블록만 걸으면 다른 편의점이 있다. 근처의 다른 편의점으로 향한다.

③ 다른 곳에 가는 게 더 귀찮다. 한숨은 나오지만 일단 기다려본다.

④ 나올 때까지 문을 잡고 흔든다. 이러면 빨리 나오지 않을까.

⑤ 개열받으니까 가게 옆에 있는 주차금지판이라도 발로 차 쓰러뜨리고 간다.


《 문제 해설 》


① 술은 무슨,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② 한 블록만 걸으면 다른 편의점이 있다. 근처의 다른 편의점으로 향한다.


①, ②번의 경우, 점주의 입장에서는 팔지 못한 아쉬움보다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메모에 쓰여진 대로 ‘불편을 드렸’기 때문이다. 본래 편의점이란 것은 당신들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 특히 24시간 운영 매장은 하루 24시간 중 어느 때나 방문하여도 당신이 필요한 물건을 가까운 곳에서 쉽게 구입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근무자가 야간에까지 상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도 사람이기에 기본적인 배뇨, 배변 욕구가 충족되어야 일을 할 수 있다. 해서 화장실에 가는 시간 동안의 매출은 포기하고서라도 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점주인 내 입장에서 문을 잠궈 두고 화장실을 가는 건, 그 시간에 벌 수 있는 돈만큼의 손해를 감수한다는 뜻이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돈 내고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일은 봐야 하는 거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에 사실 크게 미안해할 필요까지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사정은 있는 거고, 다시 집에를 갔든 다른 편의점엘 갔든 그것도 본인의 선택이니까.

저쪽의 세븐일레븐에 갔다고 해서 딱히 배알이 꼴리거나 하지도 않는다. 급하면 다른 데서 살 수도 있지. 어차피 동네 편의점들은 서로의 고객을 나눠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모르긴 몰라도 저 집이 화장실을 간 사이 우리 쪽으로 유입된 고객도 분명히 있을 거다. ‘저쪽이 화장실을 갔길래 우리 가게에 왔더니, 공교롭게 여기도 화장실을 갔더라’라고 하소연했던 고객도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경쟁점으로부터 깊은 동지애를 느꼈다. 우리도 쌀 건 싸야지 않겠냐.


③ 다른 곳에 가는 게 더 귀찮다. 한숨은 나오지만 일단 기다려본다.


그래서 ③번의 경우에는 미안함보다는 고마움이 크다. 그저 귀찮아서 다른 데를 가지 않은 걸 수도 있겠지만 기다림을 무릅쓰고라도 이곳에서 사려고 했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면 뚜렷한 목적을 가진 고객일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만 파는 어떤 특정한 것을 사고 싶어서, 또는 여기서만 받을 수 있는 할인/적립 혜택을 위해서. 필요에 의한 기다림인 거다.

고객은 필요한 것이 명확해 그것을 사고자 하고, 우리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객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들여와 팔며 차액을 남긴다.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상대가 갖고 있고, 그 가치에 맞게 등가교환 할 뿐이다. 이게 거래의 기본 원리다. 이렇게 생각하면, 필요했던 맥주를 사며 그에 대등한 맥주 값을 지불함과 더불어 맥주를 사기 위해 기다린 시간까지 소비한 것이 되므로, 기다려주어서 고맙고 미안해야 하는 상황인 게 설명된다. 너무 계산적인 거 아니냐고? 장사하는 사람이 당연히 계산이 정확해야지. 장사가 아니더라도, 사실은 모든 관계가 일종의 거래 아니겠나. 따라서 이 경우에는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라는 상투적인 말과 함께, 구매 금액에 따라서는 상투적이지 않은 작은 서비스까지 쌉가능하다.


④ 나올 때까지 문을 잡고 흔든다. 이러면 빨리 나오지 않을까.


여기에 관해서는 여러 에피소드가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④번을 선택한다. 필자가 파악한, 이 방법을 선택한 자들의 인식 구조는 이러하다.


문이 닫혔으니까 > 문을 흔든다.


끝. 존나 단순. 하이퍼 미니멀리즘 브레인의 극치. 정말로, 흔들면 열릴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직원이 화장실을 갔던, 무슨 사정이 있던, 흔든 문의 종소리에 동네가 시끄럽던, 너무 세게 흔들어 문이 부서지던 지들 알 바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없다. 이런 멍청한 새끼들의 만행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도 꾹꾹 참다가 언젠가 한 번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날, 화가 나서 따진 적이 있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남의 가게 문을 왜 이렇게 흔들어요? 유리문인데 이거 부서지면 너만 다치세요. 나는 기물 파손으로 신고할 거고.”


“빨랑 나오라고 그랬다, 왜!”


“화장실 간다고 써 붙인 거 안 보여? 그리고, 니가 나오라고 하면 내가 나와야 돼? 나는 똥도 못 싸냐? 니가 존나 흔들면 나는 시발 똥도 끊고 나와야 돼? 내가 왜? 너 뭐 돼?”


급발진한 건 미안한데, 너가 뭐가 된다고 해도 나는 똥을 싸야겠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 편의점 직원은 아주 우습게 아는 인성 개 빻은 인간들. 지들은 일하다가 화장실 한 번 간 적 없는 것처럼, 근무 중에 자리 비워도 되는 거냐고 고나리질을 한다. 뭐 얼마나 대단한 걸 사겠다고 저 지랄인가 하고 보면, 술이나 담배, 아이스크림 정도다. 문을 잡고 흔들어 댈 만큼 긴급하게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금은 저런 사람들에겐 “매너를 안 지켜주면 나도 팔지 않겠다.”하고 쫓아낸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판매자와 구매자의 거래는 동등한 조건을 약속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존중받지 못하면 존중할 수 없다. 댁이 ‘여기 아니면 살 데가 없냐’고 하는 것처럼, 나는 뭐 님 아니면 팔 사람 없겠냐. 내가 안 팔아요.

너 그러다 단골 떨어지는 거 아니냐고? 단골들은 저런 행동을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⑤ 개열받으니까 가게 옆에 있는 주차금지판이라도 발로 차 쓰러뜨리고 간다.


④번 문항과 마찬가지로 우월이 깔려 있다. ‘내가 졸라 귀찮은 데도 여기까지 나와줬는데, 하필 지금 내가 온 이 시간에 니가 뭔데 감히 자리를 비워?’라는 심리로 풀어볼 수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④번이나 ⑤번이나 둘 다 좆같다는 거엔 별 차이가 없지만, ⑤번의 경우는 자신이 합당한 응징을 했다고 착각한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화장실에 간 그 잠깐 사이에 주차금지판이나 외부의 화분을 부수거나 밖에 진열된 생수를 훔쳐 가는 식이고, 그걸로도 성에 차지 않으면 클레임을 올리기도 한다. ‘내가 편의점에 갔더니 화장실에 갔다며 문이 잠겨 있더라’라고 사실만 적었을 경우, 지들이 읽어봐도 사실 별로 잘못된 게 없어 보이기 때문에 거기에 말도 안 되는 살을 갖다 붙인다. 잠궈 둔 채로 몇 시간을 비웠다던가(한참 동안 밖에서 비를 맞으며 기다렸다는 세상 억울한 구라도 첨가), 구체적인 사례도 없이 그저 ‘불친절’했다고 하던가. 시간대별 영수증 결제 기록과 CCTV만 확인해도 쉽게 들통날 거짓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놓는다. 자기가 잠시 불편했단 이유만으로 어떻게든 뭐라도 불이익을 주고 싶어서.


나는 이런 멍청한 인간들을 볼 때면 정말이지 자살하고 싶다. 도저히 고쳐 쓰지도 못할 이런 인간들과 똑같은 인권을 부여받은 채로 함께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고 있다니. 허구한 날 이런 개 못돼 쳐먹은 글들이나 쓰고 있는 나도 좋은 사람은커녕 나쁜 사람에 더 가깝지만, 멍청한 것들이야말로 나쁜 사람보다 더 나쁜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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