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알록달록 Oct 09. 2023

최근 시청 기록

20231009



최근 시청 기록


1. Apple TV+ 영화 [테트리스]


그 ‘테트리스’ 맞다. 테트리스 탄생 실화를 영화화한 애플 플러스 오리지날.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들이 다 그렇듯이 고증에 논란이 있다. 정보를 찾아보니, 실화에서 영감을 받는 건 맞지만 극적인 부분은 대부분이 각색된 모냥이다. 근데 정보를 더 깊이 찾아보니까 실화가 이미 존나 드라마틱함,,, 게임 테트리스는 할 줄만 알았지, 이런 뒷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시청 후 나무위키 정독 필수다. 영화는 테트리스를 만들 게 된 과정보다 만들어진 그 이후, 세계 게임 회사들 사이에서의 테트리스 저작권 쟁탈전으로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다. 계약에 관한 게 꽤 복잡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뇌를 비우고 보면 뭔 소린지 몰라 지루하기 짝이 없을 테지만 집중해서 따라가기만 한다면 존잼일 수도. 다만 국사와 세계사가 극혐이라 이과를 선택했던 필자처럼 극 중 배경이 되는 소련에 대한 기본적인 역사적 지식이 없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영화에서는 KGB와 관계된 사건들이 왜곡 정도도 아니고 아주 우기는 수준이라고. 늘 영화는 영화로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야 함. 그리고 테론 애거튼은 애 셋 딸린 콧수염 난 아저씨로 나와도 그저 귀요미였다. 귀요미 테로니가 일본으로 가는 길에 한국의 공항에 경유해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설정도 잠깐 나옴.

작품성이 좋은 건 아니니 막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고, 게임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에게는 추천. 주로 남자들이겠지. 어릴 적 일본으로 잦은 출장을 다닌 아부지 덕에 사내아이들의 꿈과 희망이던 닌텐도사의 갓템 "게임보이"를 가져 본 고전 게임 시대의 나는 해당 오브제가 화면에 등장했을 때, 정말이지 가슴이 웅장해졌다.

아, 그리고 아쉽게도 정작 테트리스를 플레이하는 장면은 의외로 아주 조금만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게 의도적이었다 믿으며 그편이 더 쿨하다고 평가하기로 했다. 굳이 보여주고 설명하지 않아도 세상 사람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해 본 독보적인 갓겜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내보이는 것 같아서.




최근 시청 기록


2. Apple TV+ 시리즈 [세브란스 : 단절]


이건 진짜 제발 봐라... 개인적으로 애플티비를 구독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오직 이 시리즈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이거 하나만으로도 구독할 가치가 있었을 정도다. 나는 이걸 보려고 거의 2년을 기다렸다.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할지도 몰랐지만 오히려 큰 기대에 비해서도 기대 이상이었던 작품. 예전부터 느꼈지만 벤 스틸러는 꽤 과소평가 된 인물이었다. 이번 시리즈물로 모두에게 재평가되고 있어 팬으로써 안도했다. ‘창작자가 유명 코미디 배우’라는 타이틀 때문에 대중들은 그들의 창작물을 보기도 전부터 편견을 가졌지만, 나는 특히나 이런 코미디 배우들의 정극 연기나 희극이 아닌 장편 연출이 참 좋았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같은 벤 스틸러의 전작들이나, [이터널 선샤인]의 짐 캐리, [우리도 사랑일까]의 세스 로건, 악역도 끝내주는 스티브 카렐, 그리고 조나 힐의 최근의 거의 모든 참여작들(하다하다 이젠 다큐까지 손을 댔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진지한 통찰이 없이는 진정한 웃음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고, 코미디언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이 사실은 나에게 굉장히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세브란스 : 단절] 역시 시청자에게 끊임없이 무거운 철학적 질문들을 던진다.

추가로 벤 스틸러는 음악적 취향이 대단히 좋다. 그가 만든 영상에서 사용된 모든 음악은 훌륭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늘 보여주던 영상미도 마찬가지지만 이번작은 오프닝 시퀀스까지 미쳤는데, 나는 이 시리즈를 보고서 그가 창작을 할 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얼마나 엄격하고 강박적인 태도를 가졌는지 뼛속 깊이 느꼈다.

그리고 주인공 역의 애덤 스콧에 대한 칭찬을 안 할 수가 없는데, 헬리.R의 사건 직후 엘리베이터에서 마크의 아우티 인격이 이니로 스위치되는 순간, 최근 본 [천박사 : 웅앵]에서 선녀무당 역 박정민에게 선녀가 빙의했던 그 장면이 오버랩됐다. 예전의 작품에서부터 그의 내공을 진즉에 알아본 벤 스틸러의 신의 한 수. 비주류였던 또 한 명의 코미디 배우가 재평가되는 기회였길. 물론 그 외에도 이미 지리는 캐스팅이었다. 샤라웃 투 패트리샤 아퀘트.

당연히 시즌2 확정.




최근 시청 기록


3. Apple TV+ 시리즈 [플라토닉]


남녀 사이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흔해빠진 소재인 둘 사이의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아닌, 정말 남사친과 여사친 그 잡채. 둘을 수상하게 만드는 건 주변인들일 뿐이다. 왜 남자와 여자는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없다고 단정하는가. 나도 이 시리즈를 보고 떠오르는 남자 사람 친구가 있었다.

벤 스틸러 얘기를 하며 언급한 세스 로건과 로즈 번이 주연으로 나온다. 둘이 함께한 작품이 꽤 있었던 걸 보면 아마 사적으로도 이 드라마에서의 관계와 비슷한 친분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개그 궁합이 굉장히 좋고 편안하거든. 두 배우의 찐텐, 찐케미가 보는 내내 즐거웠다. 역시나 예상대로 둘이 각본에도 참여함. 완전 오피스 와이프네 이거ㅋㅋㅋ

코미디 작가였던 세스 로건의 각본 스타일을 참 좋아한다. 한계점 없는 개병맛까지 가면서도 그렇게 더럽지만은 않은, 자신만의 따듯하고 귀여운 무언가가 있다. 이 시리즈에서도 같은 맥락인데, 그의 작품들이 다 그런 식이었지만 도무지 질리지도 않는다. 웃을 땐 꼭 초딩이 장난치다가 들켰을 때 낼 것 같은 웃음소리로 웃음. 웃을 때마다 진짜 존나 귀여워 죽겠다. 심지어 유튜브엔 그의 웃음소리만 모아놓은 영상도 있다. 강동원이 목공하는 영상보다 조회수가 높다.

로즈 번은 [당신이 사랑하는 동안에] 때만 해도 이런 여배우가 아니었다. 청순하고 예쁜 이미지로 필모를 쌓아도 됐었을 텐데, 무슨 이유에선지 스스로 개그캐로 남는 선택을 했다. 의외로 잘했으며, 그 선택은 그녀를 대체 불가능한 여배우로 만들었다. 특히 [스파이]에서의 레이나 역은 멜리사 맥카시 보다도 웃겼다. 당연히 [플라토닉]에서도 망가짐에 망설임이 없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은 도른 자아를 숨기고 있는, 남편보다는 친한 남사친 앞에서 더 민낯일 수 있는 여자들의 심리를 사랑스럽게 연기했다.

미국식 유머가 취향에 맞고 헐리웃 가십에 밝은 편이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음. 에피소드들이 시트콤을 보는 듯하고, 조연들도 은은하게 돌았다. 가볍게 웃으면서 호로록 볼 수 있는 드라마로 애플티비 입문용으로 추천.




작가의 이전글 안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