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적인 비관론자 혹은 염세적인 낙관론자

20220810

by 김알록달록

낙천적인 비관론자 혹은 염세적인 낙관론자

1. 생일



매년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갈 때마다 다 같이 유난떠는 걸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다. 늘 그래왔 듯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 갈 뿐인데. 끝자리가 n+1년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뭐가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의미로 생일이란 개념도 그게 그렇게 축하할 일인지 잘 모르겠다. 엄마가 개고생해서 낳은 날이지, 내가 뭘 잘해서 태어났나. 조류나 파충류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알을 깨고 나왔다면 또 모를까. 그런 거라면 축하받을 일이지. 킹정.


내가 '태어난 날'인 내 '생일'은 1987년 가을 어느 날. 그 날 하루였을 뿐이다.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날이라고 의미까지 부여해서 매년 같은 날 기념씩이나 하는지. 그런 사람들은 광복절에 태극기는 챙겨 달고 있니?



해서 주변사람 생일도, 갖다 붙이면 그만인 수많은 기념일도 잘 챙기는 편은 아니다. 그러니 부디 내게 섭섭해 말길(최근에 친구 하나가 생일이었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어쩌다 챙기는 주변인의 생일도 그냥 분위기타서 눈치껏 챙기는 거임.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걸 좋아하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걸 좋아하고 챙김 받길 바라기 때문에, 이런 사회에 껴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이해할 순 없지만,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야 덜 외롭다.


물론 나도 선물은 좋아한다. 하지만 진짜 생일도 아닌 '생일이라 부르는 날'에 받는 것 보다 아무 날도 아닌 그런 날에 아무렇지 않게 뜬금없이 받는 아무 선물의 감동은 이길 수가 없지. 그게 진짜 선물 같은 선물 아니겠느냐고.


정말 중요한게 뭔지 아직도 모르겠어?



2. 마스크의 기능



어쩌다보니 코로나의 최대 수혜자는 마스크를 쓴 나샛기다. 불특정다수가 방문하는 편의점에서, 그것도 이런 건전치 못한 동네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매일같이 카운터를 본 다는 건 정말이지 욕이 안 나오고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편의점이라는 업종 특성상 손님이 들어와서 나가기 까지의 계류 시간이 타 업종에 비해 매우 짧은 편이고, 그 짧은 시간동안 구매자와 판매자는 거래라는 목적만 달성되면 그만이기에, 별다른 대화랄 것도 없이 끝난다. 일상적이고 만만한게 편의점이기 때문에 '계산해 주는 사람'정도도 아니고 거의 뭐 인격체로도 존중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임(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매너는 남녀노소를 불문하며, 의외로 경제적 능력과 배움의 정도와도 무관하다.



그 누구한테도 하찮은 '편순이'라는 자리는 사실 짧은 시간 안에 한 사람의 찐 인간성을 관찰할 수 있는 묘하고도 재미있는 직업이다. 단, 동행이 있을 때엔 경우에 따라 인간성을 숨길 수도 있으니(한 여자는 남친과 같이 올 때에만 나에게 언니언니하며 갑자기 친한 척을 한다. 좆까 이년아) 철저히 혼자 왔을 때의 행동을 봐야 함. 본인이 잘 보일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 상대, 본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 nobody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다(사회적 약자와 비슷한 포지션, 강약약강 or 강강약약).



아무튼 현실이 이렇다보니 마스크 속에서는 쌍욕을 뱉고 있다. 예를 들면,


"봉투 필요하세요?"


(봉투값 50원이 추가되기 때문에 안 물어볼 수가 없다)


"아니 그럼 나보고 이 걸 어떻게 들고 가라고?"


(실컷 골라서 카운터에 가져올 때는 어떻게 들고 왔는데?)


"담아 드릴게요^^"


마스크 : '그럴 땐 그냥 "네 주세요-"하면 되는 거야, 시발롬아.'


뭐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들.



알럽마이잡.


알럽마이잡.


알럽마뻐킹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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