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난 연애.
몇몇이 '남친이 이젠 전남친이 돼서 넷플릭스 비번을 바꿨다'는 얘기에 걱정해 줬다. 가십으로 소비될 궁금함이 아니라 진심어린 걱정인 것 같아서 괜찮냐고 물어봐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 겉으로 티 내지 않아도 속으로 힘들었을 거라며, 소개를 해주겠다느니 하기도 했다.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전혀 힘들지 않고 있고, 소개도 관심이 없다(무조건 자만추). 티를 안낸게 아니라 티를 낼 만한 뭐가 없었다. 나는 엄살이 심한 편이라 힘들면 내가 먼저 징징거렸을 거임.
시작부터 장거리 연애였다. 두 사람 다 매우 개인적이고 독립성이 강한 성격들이라 오히려 이 점이 5년이란 시간 동안의 만남을 유지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최측근들은 알겠지만, 연애 후반 쯤엔 1년에 두 번은 봤었나. 거의 뭐 명절 주기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다. 물론 초반엔 그 정도는 아니었지. 2주에 한 번은 꼬박꼬박 먼 거리를 달려 만났었지, 우리도. 하지만 당연히도 주기가 점점 길어졌고, 만남은 자연스레 0에 수렴.
남자친구는 나이가 꽤 많았다(18살 연상). 이 때문에 처음부터 찬반이 갈렸다. 우리가 좋아 만난다는데 왜 주변에서 더 난리인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다. 주변 사람이 아니어도, 둘이 데이트라도 나가면 그 시간 내내 편견에 찌든 외부 시선에 맞서야 했다. 쓰고 보니 피해망상 환자 같은 얘길 한 것 같지만, 이거 안겪어 보면 정말 모른다. 이 지랄을 5년을 겪었다. 이 얘길 처음 듣는 누군가 또 오해할까봐 확실히 말하지만 불륜같은 거 아니다...
둘 사이의 시간적 갭에 비해 우린 잘 맞았다. 남친은 그 나이 치고는 철이 좀 없는 편이었다. 살면서 책임의 무게를 져 볼 일이 별로 없던 탓이었다(한 번 다녀왔지만, 자식은 없음). 반면 나는 내 나이에 비해서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마저 책임져야하는 입장이었기에, 의외로 둘의 관계는 갑과 을의 개념 없이 동등했다. 서로 그 점에 대한 리스펙이 있었다.
나이 때문에 생긴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남친의 학창시절 사진을 보게 됐는데, 죄다 흑백사진 뿐이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남친의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엔 웬 할배들이 나와서는 나에게 '형수님!' 소리를 했다. 한 번은, 본인 친구의 아들이 군대를 간다 해서 용돈을 주고 왔다고 했다(...). 지 군시절엔 지금은 없는 보직인 '필기병'이었다고. 그 시절엔 컴퓨터가 상용화 되지 않아 전부 다 수기로 기록했었다고 한다(아직도 글씨를 잘 쓴다). 군대 가기 전엔 대학생활을 잠깐 하기도 했는데 무려 학생 데모에 참여해서 시위하다 퇴학처리..
이렇게 체감 세대차가 꽤 크다보니 남친은 나를 딸처럼 아끼기도 하고 나 역시 보호자처럼 느끼기도 했다. 한부모가정에서 자란 내게 있던 결핍이 이 때 많이 해소됐다고 생각한다.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는 여자의 심리는 아버지에 대한 정서적 결핍에서 온다'는 썰은 뻐킹참트루임. 근데 그게 뭐 어때서? 어딘지도 모를 한 구석이 늘 불안정한 나였고,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든든함이었다.
세대차에 따른 서로 다른 사고방식 때문에 싸운적도 많지만, 내 생각에 우리가 싸운 건 각자의 성격 때문이 컸고(남친은 내가 어리다고 봐주지 않았고, 나도 남친이 어른이라 해서 져주지 않았다), 나이 차이로는 덕 본 게 훨씬 더 많았다. 서로 부족한 부분에 대해 상호 보완이 됐다. 아재가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하다 막히면 나에게 "도움!!"을 외쳤고, 내가 고민이 있을 때 남친은 인생 좀 더 살아 본 인간으로써 매 번 유익한 조언을 해 줬다.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많은 건강한 관계였다.
이젠 다 재밌는 추억이 됐다. 무슨 시발 '금지된 사랑'을 하는 것 같은 기분에 취해 착각하지 말라던 반대 입장의 비난(이 말을 한 친구와는 손절했다)과 우려와는 달리, 평범하게 만나 바람직한 연애를 했고, 감정소모 없이 어른스런 그라데이션 이별을 했다. 그저 남들처럼 사랑해서 만났고 사랑이 식어서 헤어진 그 뿐이다. 드라마는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썼다.
그러니 걱정 마시라. 혼자인 나도 매우 괜찮다. 오히려 좋다. 전 보다 내가 더 온전히 나다워졌다. 전남친 본인도 그렇기를 바란다.
또 한가지,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사랑에 대한 열정이 식는 게 전혀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그 덕에 같은 여자로서 맹히씨의 마음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40대의 사랑도, 50대의 사랑도, 지금 당신이 느끼고 있는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걸 꼭 알려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