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차이

20220824

by 김알록달록


재미있는 일이 생겼는데, 이걸 혼자만 갖고 있기엔 꽤 벅차서 맹히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딸내미 치고는 무뚝뚝한 편인 내가 먼저 전화를 하는 경우는 잘 없기 때문에, 전화를 받은 맹히씨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무슨 일이 있긴 있지. 맹히씨는 목소리 톤이 바뀌며 왜, 무슨일인데? 했다. 상황을 설명하려면 요즘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걸 어쩔 수 없이 말해야만 했다. 까놓기 창피하긴 했으나 이 '재미있는 일'을 말하고 싶은 욕심이 더 컸기도 하고,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수도 있겠지 싶어서, 요즘 글을 쓴다고 계획에도 없던 커밍아웃을 했다. 맹히씨는 순간 황당한 티내지 않으려고 하는 게 티가 났다. 본인이 2년 전에 준 책(문제의 [무소유])도 아직도 안 읽은 니가 뭔 글이냐 싶었겠지. 그런 쪽에 관심있던 적이 생전 없었으니 쌩뚱맞게 들렸을 것이고. 잠깐의 뮤트에서 여러가지 마음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다'는 말에 순간 들었을 안좋은 예감에 비해서는 걱정할 일이 아니란 것에 내심 안도하는 눈치였다.



"아 난 또 뭐라고. 정말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그래서?"


"엄마. 내가 어디가서 사고 칠 타입은 아니잖아, 술도 안하고. 나만큼 건전한 애가 어디있어."


"야, 너는 애가 쓸데없이 너무 건전해서 그게 문제야."



앗, 안도한게 아니라 조금 실망한 모양. 딸이 너무 건전해서 탈인 게 걱정인 엄마라니. 차라리 사고라도 치라니. 역시 이 쪽도 정상은 아니다. 시집도 안 간 딸내미에게 엄마는 아직도 가끔 (진심으로)'손주 좀 낳아 달라' 하곤 한다. 어디가서 정말 애라도 배 왔어야 했을까. 그랬으면 적어도 글 쓴다는 얘기보다 반가운 얘기였을텐데. 내가 천하의 불효자식이다.


아무튼 썰을 풀다가, 맹히씨가 내가 쓴 글은 어디서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안알랴줌'을 시전. 가족 얘기도 간간히 나오는데 좋은 말은 없고 욕 뿐이라고, 그래서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솔직하게 이유를 댔다. 맹히씨는 수긍했다. 바로 수긍한게 존나 웃김. 그렇게 하니까 니 스트레스가 해소되느냐고 물었고, 조금은 그런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맹히씨는 그러면 됐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왜 나는 맹히씨가 내 글을 읽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을까 생각해 봤다. 맹히씨도 어차피 아는 내용일텐데. 보탠 것 없이 팩트만 조졌고, 그걸 쓴 나는 떳떳한데.





'She said & He said'의 포멧을 가진 책과 영화들.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 두 사람. 혹은 n가지로 해석하는 n명의 사람들.


극명한 입장의 차이.



며칠 전 새벽, 한 언니와 통화를 했다. 언니는 A와 B 사이의 사건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A에게 그 얘기를 들었어서 알고 있다고 했다. 언니는 B에게 들었다며 그 날 일에 대해 본인이 들은 바를 이야기했다. 내가 들은 이야기와 달랐다. A에게 듣기로는, B가 이유없이 갈등을 빚었고, A는 거기에 대해 일방적으로 억울한 입장이었다. 언니의 말을 들어보니, B는 어쩌면 A에게 그렇게 굴만 한 이유가 있기도 했다. A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쏙 빼고 나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언니 역시 B의 말만 듣고 A를 나쁘게 생각했다가, 내가 알고 있던 A버전의 이야기를 듣고는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B가 말하지 않아 오해했다고 했다. 두 명의 제 3자가 말을 맞춰 객관적 사건의 퍼즐이 완성됐다.



나도 이런 오류를 저지른 건 아닐까. 그래서 사건과 관련된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읽게 된다는 게 불편하게 다가왔을까. 나의 기억과 분명히 다를테니까. 혹시 읽게 된다면, 변명이든 해명이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그럼 나는 이제와 그 말을 듣고 싶기는 할까. 서로의 입장을 밝힌다고 해서 과연 달라지는게 있을까. 있다고 치더라도, 나는, 우리는, 상황이 달라지길 바라긴 하는걸까. 그게 무슨 소용은 있을까.


지금 혼자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다 무슨 소용일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는 말은 정말이지 인류에게 언어가 발명된 이래 최대의 모순이다. 내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다면 말야, 나 같으면 말야, 절대 그렇게는 안했을거거든. 내가 그 입장이라고 생각하면 말야,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이건 나 뿐만이 아니라 상대도 그럴 것이고.


나는 평생가도 너일 수 없고, 너는 죽어도 나일 수가 없다.



극단적일 만큼 서로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어쩌다 모여 유감스럽게도 한 가족이 되어 한 공간에서 같이 살게 됐고, 그래서 거기서 생긴 모든 문제들은 그냥 필연이었을 것이다. 함께 하는 한은 언제가 됐어도 터질 문제들이었다. 이제 와 서로의 입장에 대해 대화한다 한 들, 각자가 모두 변하지 않는 이상 상황도 달라질 것이 없다. 애초에 첫 단추부터 순서를 잘 못 끼운 정도가 아니라 구멍에 맞지도 않는 잘못된 단추를 끼웠던 것. 이건 내 탓이 아니다. 아마 우리 중 누구의 탓도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으니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모든 게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 졌다. 자책할 이유도 미워할 이유도 없어졌다. 아직은 문제가 끝난 게 아니기에 이유조차 없어진 그 미움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조금 줄일 수는 있을 것도 같다. 얼마 되지도 않는 그 동안의 글들에서 내가 너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각자 어른의 사정이 있었을 건데. 본인들의 입장은 분명 또 다를텐데. 어쩜 이렇게도 우린 다른 걸까. 서로가 인연인 것이 그저 비극인 사람들. 만나서는 안됐을 사람들. 가족이라는 악연.



맹히씨에게 내 글을 보여줄 수 있을까. 멀지 않은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 지도. 지금은 아직 아님. 아직은 내가 별로 내키지가 않네.



언젠가 알게 될지도 모르는 것들을 지금 알 수만 있다면.


지금은 모르는 것들을 언젠가는 알 수라도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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