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삽을 빌려야 한다. 두 녀석을 잃었다.
간간히 묻어 줄 일이 있다 보니 내 삽을 하나 장만할까 생각도 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 오빠가 다리를 다쳤었는데, 그 때 쓰던 목발을 아부지가 '나중에 언젠가 다시 필요해지면 새로 안사도 되니까'라는 이유로 다 나은 후에도 집 창고에 보관 했다. 엄마는 질색을 했다. 가지고 있으면 다시 쓸 일이 생길 것 같다면서.
몇 년 후, 목발보다 엄마가 먼저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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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 영역 밥 자리는 네 군데다. 이제 구조엔 한계가 있으니 밥이라도 열심히 주자며.
한 자리는 새벽에만 팝업스토어처럼 일시적으로 오픈하고 해 뜨는 시간에 흔적도 없이 치우므로 대충 3.5군데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 쪽은 뚝딱이네 가족 자리. 새벽 시간에 가게 앞 밥 자리엔 초롬이가 몇 시간이고 죽치고 있는 바람에 뚝딱이 새끼들이 밥 먹으러 못 오기 때문에 건물 하나 정도를 사이에 둔 거리 즈음 주차장에 따로 놔 준다. 뚝딱이네 애들은 가리는 것도 없고 다들 지 엄마닮아서 대식가다. 하루에 반나절 정도만 밥을 두는 곳이다보니 낮 동안엔 그 잘먹는 녀석들이 굶기라도 했을까봐서 출근하자마자 그쪽부터 제일 먼저 챙기는데, 밥 놓은지 두 시간 정도 됐는데도 다 어딜 갔는지 아직 아무도 안먹고 그대로다. 오늘 좀 이상한 날이다 싶었지.
초롬이도 오늘은 지각을 했다. 전 타임 근무자인 친구의 말로는 보통 내 출근 시간에 맞춰 미리 와서 기다린다는데, 오늘도 일찍 왔었다가 가게 앞에서 뭘 마시고 가는 손님을 피해 잠깐 자리를 떴다고 했다. 그래서 금방 오겠거니 했는데 어디 멀리 다녀왔는지 이제서 왔다. 일정 행동 패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짧은 순간에도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일은 오겠지 뭐'라며 하루 하루 기다린지 1년이 다 된 찍먹이를 생각하면, 이렇게 조금 늦기만 해도 초롬이를 본 게 꼭 어제가 마지막이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제일 오래된 자리인 행복한 둥지(건물 이름) 주차장엔 그 동안 참 많은 녀석들이 거쳐갔다. 그 쪽은 비둘기도 와서 먹고 가고 모르긴 몰라도 쥐도 먹는 것 같고. 고양이도 여러 녀석들이 오며 가며 불규칙적으로 들르는 곳이라, 밥은 매일 놓는데 누가누가 얼마나 자주 와서 먹고 가는지 알 길이 없다. 어쨌든 밥은 계속 줄고는 있으니 그저 채울 뿐. 물 갈고 밥 채운 후 한 두 시간 있다가 들여다 보니 누가 또 왔다가기는 했다. 오늘은 메뉴가 두 가지 였는데 한 놈만 팬 거 보면 자두 아니면 쩜복이 같았다.
자두는 옥이네 창고에 또 다시 새끼를 낳았다. 올 봄에 낳은 애기들이 독립을 시작했지만 아직 성장기이기도 했고, 자두도 외관상 티가 안났었어서 임신인 줄도 몰랐다. 창고에 보관해 둔 겨울집에 며칠 전 갑자기 낳아놨다. 그 덕에 또 옥이네 사장님은 자기네 가게 창고도 출입을 못하신다. 자두가 스트레스 받고 이소할까봐. 창고에서 뭐가 필요하시면 유일하게 출입 권한이 있는 나에게 부탁하신다. 물론 나도 출입은 최소화한다. 밥 물 갈아줄 때에만 들어가고 용건이 끝나면 얼른 나온다. 자두는 사람친화적인 고양이가 아니라서 내가 잠깐 들어간 겨우 1분 사이에도 내내 하악질을 한다.
오늘 들어갔을 때엔 웬일인지 자두가 자리를 비우고 새끼들 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흔치 않아서 사장님을 불러 모셨다. 자두 없을 때 얼른 오셔서 애기들 보시라고. 자두가 근처에 있을 것 같아 사장님과 둘이 소근소근 속삭이면서, 우리 냄새가 남을까봐 가까이도 못가고 한 두 걸음 멀리서 봤다. 언제 또 볼 수 있으려나 싶으셨는지 핸드폰을 주시며 애기들 사진 좀 몇 장 대신 찍어달라 하고는 먼저 나가셨다. 찰칵 소리가 나면 자두가 올테고, 자두가 왔을 때 사장님이 계시면 극대노할 게 분명했다. 나 혼자 후딱 찍는 게 들키더라도 상황이 나았다.
사진을 두 장 찍었을 때 쯤 화면이 조금 이상한 걸 느꼈다. 아가들이 자고 있긴 했지만 그냥 기분이 자꾸 이상해서 확대를 했다. 숨을 안 쉬는 것 같았다. 자두가 바로 올지 모르니 망설이면 안됐다. 확인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댔다. 총 네마리 였고 두 놈이 숨을 안쉬었다. 얼마 안됐는지 아직 온기도 남아 있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두 녀석을 바로 데리고 창고를 나왔다.
사후 경직이 이미 시작된 상태라 뭘 시도해 볼 것도 없었다. 아득했다. 원인이 뭘까. 자두가 갓난쟁이들을 두고 자리를 오래 비우는 애가 아닌데 어딜가고 없는걸까. 무슨 일이 생긴걸까. 사고라도 난걸까. 어느정도의 시간 동안이나 자리를 비운걸까. 자리를 오래 비워서 저체온으로 갔을까. 겨울집 안 쪽 방향에 있는 두녀석은 살고 입구 쪽에 가까이 있던 두녀석이 죽은 거니까. 만약 그런거면 남아있는 녀석들은 어쩐다. 단지 먼저 간 형제들보다 아주 조금 더 버티고 있는 거라면. 자두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창고를 나오는 찰나의 시간동안 고민이 꼬리를 물었다. 나에게 사진을 부탁했을 뿐인데, 죽은 아이들을 손에 들고 나온 나를 보신 사장님은 낙담하셨다.
빠른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 시간 간격으로 다시 와서 자두가 돌아오는지 확인한 후에 퇴근 때까지도 오지 않는다면, 그 땐 빨리 인공수유를 준비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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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는 돌아왔다. 새끼들 중 반이 없어졌는데도 찾지 않는 걸 보니 죽었다는 걸 외출 전 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알면서도 얼마간 더 품고 있던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가늠할 수도 없다.
남은 아이들에게 젖 물리는 걸 보고 창고를 나왔다.
퇴근하고 아이들을 묻어 주려고 가게에 데리고 있다. 체온이 식어간다. 자두가 어지간히 잘 돌봤었는지 털도 뽀송하고 살도 토실하다. 탯줄도 벌써 떨어져 아물고 있는 중이었다. 가엾은 녀석들. 아직 눈도 못떴는데..
내가 놓친게 뭘까. 우리가 놓친게 뭘까 자두야.
오늘도 삽을 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