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좋아하는 돈 얘기로 시작해 보자.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모든 평일에는 하루도 안 빼고 매일 은행에 간다. 전 날 들어온 수입 중 카드 매출을 제외한 현금을 입금하기 위해서. 가맹점이기 때문에 현금 수입은 정산 후 내 주머니가 아닌 회사 통장으로 먼저 들어간다. 입금이 한 달치 누적되면, 원가와 임대료 등 기타 비용을 제 한 후 가맹계약서에 따라 분배된 금액만큼 나에게 나눠준다. 자영업자이지만, 한 달에 한 번 지정된 날짜에 본사로부터 월급을 받는 셈.(그 금액에서 인건비나 세금이 또 나가므로 순이익이 아니다.) 사실상 일일 정산에 뜬 현금 매출 금액과 다르지만 않다면, 며칠에 한 번이든 일주일에 한 번이든 합산한 금액을 입금해도 되고, 아니면 현금을 내가 직접 수취한 후에 그 금액만큼 내 통장에서 회사통장으로 이체만 해도 상관은 없다. = 은행을 안가도 된다는 말. 입금이야 우리가게에도 ATM기가 있고, 입출금 모두 수수료가 없다.
그렇다보니 내가 은행에 가야한다고 했을 때 저번에 방문했던 본사 지역팀장은, 왜 굳이 발품을 팔아가며 은행에 가느냐고, 다른 점주들은 잔돈 바꿀 때에만 은행에 간다고 했다.
팀장이야 실무 경험이 적으니 뭘 모른다고 치자. 그럼 다른 점주들은?
다들 동네 장사 혼자 하시나 봐?
같은 '상권'이라 할 수 있는 주변 가게와의 관계는 어떤 장사를 해도 중요하겠지만, 편의점이라는 업종은 특성상 특히나 주변가게의 흥망성쇠에 직접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동네 한 가운데에서 편의점을 하고 있는 나샛기는 주변 상권의 구성원들에게 항상 감사해야하는 입장이며 최대한 적이 없어야 한다는게 내 철칙. 기왕이면 서로 좋은 관계면 더 좋고. 그렇다고 맘에도 없는 말 해가며 싸바싸바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은 또 아니기 때문에 괜히 억지로 애를 쓰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에서의 찐 호의 정도만. 물론 그 호의도 의심을 한다거나 아님 그냥 나샛기를 싫어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부 사람들도 있기에 적이 아주 없다곤 할 수 없지.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건 없으니까.
해서 7년 째 매일같이 은행에 걸어다닌다.
은행에 가는 그 길에 있는 가게 분들과 매일 인사를 나누고, 은행 직원들의 얼굴도 매일 보기 위해서. 별 거 아닌 것 같겠지만 you know, 뭐든 한끗차이라는 걸.
은행 건물 1층에도 타 브랜드인 편의점이 우리가게보다 이미 먼저 있었다. 우리가 입점하면서 (접근성이 우선인)고객이 분산 돼 단골을 뺏긴 것도 있겠으나, 워낙 뒷말이 많은 집이기도 했다. 작은 규모에 비해 기록적인 클레임 건 수, 오죽하면 같은 건물 사람들이 세 블럭이나 떨어진 우리 가게로 멀어도 일부러 올까. 딱히 GS25에만 있는 특정 제품을 구하러 온 것도 아니었다. 어느 편의점에나 있는 담배와 커피 정도 사는 데도 그 집 팔아주기 싫다며 굳이 이 쪽으로 오시곤 했다. 누가 봐도 명백한데 장사가 왜 안되는지 본인만 모르는 전형적인 케이스. 얼마 못가 주인이 바뀌더니 몇 년 후 결국엔 문을 닫고 해당 업체 본사도 손을 뗐다. 의도하지 않았던 두 번째 도장깨기였다.
그건 그렇고, 이제 은행에 가 볼까.
내 다음 타임인 민옥 이모님과 교대를 한 후 가게를 나선다. 몇 걸음 안 가 사거리 모퉁이에 동네 고양이들의 핫플레이스인 쓰레기장이 있어 들고 나온 쓰레기를 버리고 나면 바로 앞에 새로 생긴 카페가 있다. 같은 자리의 그 전 카페 사모님과는 참 재밌게 잘 지냈는데(서로 ENFP 친구다), 이 분들 하고는 아직 어색하다.
카페를 지나면 우리집 창문에서도 잘 보이는 꽃집. 여기서 애옹이를 포획했었지. 사모님은 나무에 물을 주시고, 사장님은 배달 트럭에 큰 화분을 싣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어~ 이제 퇴근 하는 거야?"
"아뇨, 은행가요. 퇴근 아니고 외근이죠, 외근!"
은행이 코 앞인데 외근이라고 한 조크가 맘에 드셨는지 사장님은 'ㅋㅋㅋ외근ㅋㅋㅋㅋㅋ'하면서 기대했던 것 보다도 한참을 웃으신다. 아재들이란. 이따 담배사러 오신단다.
꽃집 옆으로는 방앗간이 있고, 방앗간은 떡집 소유. 떡집 사장님은 아까 커피사러 오셨었지. 행사라도 하시려는지 현수막을 열심히 달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 동네에서 제일 점잖으신 분들이다. 근데 무슨 현수막일까. 여쭤보고 싶지만 늦게가면 순번이 길어지니 일단 은행부터 가고, 오는 길에 구경해야지.
떡집 건물 끝엔 조개구이집. 영업은 저녁/밤에만 하실텐데도 대낮부터 부지런히 영업 준비를 하신다. 여기 사장님도 항상 밝으신 분. 새벽에 장사 끝나고 퇴근하실 때 우리가게에 가끔 들르신다. 내 출근시간에 퇴근하시고 내 퇴근시간에 출근이시라 나랑 꼭 맞교대하는 것 같아서, 항상 서로 '수고하세요'와 '고생하셨어요'를 맞교환한다. 오늘은 왔다갔다 하시면서 뭐가 많이 바빠 보이셔서 인사는 생략.
'수고하세요!'
그 앞엔 중국집. 은행은 항상 11시 좀 넘은 시간에 가는데, 점심치곤 이른 시간인데도 주문이 많은지 가게 앞에 줄세워 놓는 오토바이들이 벌써 다 빠졌다. [짜장면이 친절하고 사장님이 맛있어요]라고 쓰여진 화환이 가게 입구에 있어서 지나다닐 때 마다 웃겼는데 이젠 정리하시고 없다. 여사장님은 항상 홀 안에 계시느라고 내가 여기 밥 먹으러 왔을 때나 그 분이 우리 가게에 뭘 사러오셨을 때만 인사한다. 여기도 패쓰.
우회전으로 꺾어 은행에 도착. 청원 경찰 이모, 창구 언니들이랑은 소소한 수다를 떤다. 특히 청원 경찰 분은 나를 유독 예뻐하셔서(아들만 둘이셔서 딸이 아쉬운 마음인 듯) 우리 가게에 어떤 화분이 새로 생겼는지까지 잘 아시고 집에서 기른 화분을 선물로 가져다 주신 적도 있다. 바나나는 과일가게보다도 우리가게꺼가 더 싸고 맛있다고 매주 팔아주신다. 애기엄마인 은행원 언니는 가게에 포켓몬빵이나 메이플빵이 남아있는지 물어보고, 지점장님은 원소주 입고일을 물어보신다. 동전 교환 아니면 단순 통장 입금 업무만 보기에 대기가 없으면 5분도 안걸리는데, 이 짧은 시간동안 친목도 나누고 나름 영업도 한 셈.
은행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까 떡집서 작업하시던 현수막이 걸려 더운 바람에 살랑인다. 앗, 벌써. 추석 송편 예약 안내 현수막이었구나.
나도 다음주에 직원들 명절 근무 때 먹일 거 좀 예약해야겠다. 이 집 떡 잘해.